신문과 잡지 발표

가을에는 돌담장 길 걷고 싶다

경산2 2011. 12. 24. 10:44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하순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님들 눈도 내렸고 오

늘은 고운님과 함께 나들이나 여행을 하면 좋겠네요. 혹시 집에서 궁하면 아래의

글 읽고 즐겁게 보내시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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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는 돌담장 길 걷고 싶다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해마다 가을철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오면, 젊은 시절 데이트 장소였던 덕수궁
돌담장 길을 걷고 싶다. 추억이 서린 덕수궁을 지난여름 대한제국에 대한 연수를
받으며 갔다. 

  덕수궁은 조선 초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다. 임진왜란 직후 선조가 머
물던 이곳을 광해군이 ‘경운궁’(慶運宮)이라 이름 지었다. 고종은 1년 넘게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다 경복궁으로 가지 않고,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의 법궁(정궁)으로 사용했다. 그 후 순종은 고종이 있
는 경운궁에 ‘선왕의 덕과 장수를 기린다.’는 뜻으로 ‘덕수(德壽)’라는 궁호(宮號)를
내렸다.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은 13년간이며,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국호를
변경하였다는 점에 감회가 새롭다. 고종은 정조의 정치이념을 계승하고 다산의
여유당집을 즐겨 읽었으며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를 폐지하고 개화파를 등용했다.

서양문물을 좋아하고 양탕국이라며 커피를 즐겨 마셨고, 최초교회 정동교회를 설립
했다. 그리고 3년간 존재한 정치사회단체 독립협회에 자금을 지원하여 서재필이 독
립문건축과 독립신문을 발행하도록 도왔다.

  광무정권은(고종황제의 칭호) 중국 및 동아시아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려고,
국제조약, 국제기구에 가입을 했다. 한편 벨기에, 덴마크 등 11국가와 수교한 후
영, 프, 독, 러 등에 상주공관을 운영했다.

짧은 제국기간이지만 격변하는 시기 봉건군주가 황제국으로 명칭을 바꾸고, 동서
양의 강대국 사이에서 노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귀뚜라미 울음 아련히 들리는 고요한 저녁이 지나고 영혼이 어두운 밤을 통과할
때, 새벽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한다. 세계가 왕조시대에서 입헌군주제 그리고
의회민주주의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대한제국은 일본과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
되어 새로운 새벽을 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리처드 닉슨은 ‘인간은 패배할 때 끝나지 않는다. 포기할 때 끝난다.’ 고 했다. 앞
으로 향하여 가는 데 필요한 건 원망과 후회의 패배가 아니라, 때로는 포기하며 용
기와 도전정신,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아닐까한다. 우리 선조들은 침울한 시기인
일제강점기 36년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틴 대단한 민족이다.

  노력 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하
다. 우리는 독립운동이후 지난 60여 년 간 능동적인 열정덕분에 세계가 부러워하
는 나라로 만들었다.

선배들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들의 아들, 딸, 손주들이 행복함을 느끼며 살고 있
다. 우리 모두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작은 행복에도 만족하며 살자. 인생에서 가
장 중요한 것은 성실과 겸손이며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만 감사할 수 있다고 한다.

  근대화 시기 덕수궁에서 세계화에 대응하고자 노력한 고종의 열정이 느껴진다.
깊어가는 가을, 어느덧 찾아온 가을 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듯이 만
추의 계절, 덕수궁 돌담길의 떨어지는 은행잎을 밟으면서 생각해본다.

우리 민족의 열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새로운 희망은 계속 생길 것이고, 우리 모두
그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야겠다.

      중부매일 칼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1. 10. 21.)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