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잡지 발표

자존심 때문에

경산2 2012. 10. 2. 17:17

 

    자존심 때문에
                      
                                         경산  류 시 호/ 시인, 수필가

지난 주말, 오랜만에 대학동창 A를 만났다. 밥과 술을 먹은 후 아들 청첩장을 보
이면서, 자신이 초대할 하객은 20명도 안된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명문고와 유
명대학을 나와서 교우들도 많을 터인데, 삶이 바빠서 각종 모임에 잘 나가지 못
했다고 한다.

  A는 대학 졸업 후 공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일찍이 명퇴를 하여 중소기업에 재취
업을 했다. 그 후 각종 자격증을 획득하여 지금은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고 있다.
그의 학구적인 자세는 본받을 만하지만 수입이 적어서인지 만날 때마다 얻어먹
을 때가 많다.

또한 긴 사회생활을 했는데 자신의 하객이 20명 정도라면 어딘가 좀 아쉬워 보인
다. 그래도 A를 만나면 밉기보다 정이 가는 친구이다.

  B란 친구는 오랜 교분을 유지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하는 동창이다.
그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이재에 밝아 재산도 많이 모았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동
기들이 가까이 하기를 싫어하고, 절대로 커피 한 잔을 살 줄 모른다.

  몇 달 전, B가 필자를 비방한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왔다. 기다렸다가 모임에서
만나 둘이 있는 자리에서 조용하게 왜 그렇게 했는지 물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를
둘러 되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평소 이런 언어와 행동 때문에 많은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친구들이 번
개모임을 할 때도 B를 잘 불러주지 않는다. 

  A나 B 둘 다 자린고비이지만 차이가 크다. 젊은 시절 절약하고 재산을 모아 노
후에 편하게 살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없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람이나 친구, 지
인들에게 베풀 줄 모르며 산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B에 비하여 A는 친구
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는다.

  인생사용설명서라는 책의저자 김홍신은 ‘덕은 자기 영혼의 생김새를 예측할
수 있는 거울이자 계량기’라고 말했다. 회사나 동창회, 친지모임 그리고 사회생
활 중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위기만 모면하려는 직원이나 지인들을 보면 안타깝다.

세상을 살면서 베풂은 자비심뿐 아니라 자신을 멋지게 만들어주고, 고마워, 사
랑해, 미안해 한 마디면 미움도 사랑으로 변하게 해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주변을 살펴보면 고기 안주에 술을 잔뜩 마시며 재물 모을 궁리만 하고, 마음
의 양식 쌓는 책읽기나 교양강좌 등의 일에는 등한히 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
도 인생도 약삭빠른 것보다 조금 부족한 게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
을 깨닫는 게 어려운 것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닌 나눔이며 돈과 물질은 많이 가져봐야 더 많이 갖고 싶을 뿐
행복해지지 않는다.

  B가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서 아쉽지만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
었다. 세상을 살면서 잘못이 있을 때는 사랑과 베풂으로 용서 받기를 할 줄 알
아야한다. 멀고도 긴 삶을 살다보면 용서할 일이나 받을 일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상대방의 잘못과 죄를 용서하는 것이 나의 영혼에 박힌 가시를 제거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복과 입추가 지났으니 곧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쌀 것 같다. 여기저기서
가을의 색깔이 감지되면, 가을의 전령사라는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고 코스모
스와 들국화도 필 것이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우리 모두 자존심 때문에 생긴 사소한 감정은 지워버리
고, 아름답고 행복함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걷고 웃으며 살자.

      중부매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08. 22.)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