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의 가을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지난 10월 하순, 전국에 사는 고등학교 동기들이 수덕사 주차장에서 집합하여 가을여
행을 함께했다. 20여년 만에 찾은 고찰 덕숭산 수덕사가 옛날에는 멀리만 느껴졌는데
고속도로가 발달하여 요즘은 가까이 있는 것처럼 갈 수가 있다. 수덕사 주변의 사찰과
덕숭산은 가을을 뽐내며 나무들 마다 붉게 물들어 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백제 때 세워진 고찰, 수덕사는 여자 스님들이 수도를 하는 특이한 절로 유명하며 일엽
스님의 얘기가 깃들여 있다. ‘청춘을 불사르고’, ‘어느 수도인의 회상’ 등의 글을 쓰면서
문단에서 활약하던 김일엽은 이러 저런 일을 겪다가 결국 스님이 되어 수덕사에서 불제
자로 일생을 마쳤다.
수덕사를 방문하면, 젊은 시절 방송을 통해서 듣던 송춘희의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
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
불 켜고 홀로 울적에~’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송춘희는 ‘수덕사의 여승’ 노래가 인연
이 되어 법사가 되었고, 그 노래로 일엽스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산사는 청량함이 가장 매력적인데 맑은 공기로 몸을 정화하고, 사찰의 고즈넉함과
목탁 소리가 마음을 씻어준다. 덕숭산 자락은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한국 불조
(佛祖)의 선맥(禪脈)을 계승해온 대표적인 사찰이라는 의미에서 선지종찰이라고 한다.
지난여름 길게도 더웠고 저만치 달아나다 시샘도 했지만 이렇게 오래 된 사찰에도 어
김없이 가을이 오는 것이 보였다.
가을은 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풍경과 정취가 그만큼 멋지기 때문일 것
같다.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어 잠시 숨을 고르고 자연과 호흡하는 여행을 하면 좋겠다.
이렇게 경치 좋은 산과 나무를 보면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범사에 감사하면 뇌에서
엔도로핀이 분비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창작활동의 마르지 않을 원천이 된다. 낯선 공간에서 머릿
속을 낯선 이야기로 채우는 일은 여행이 아니면 결코 얻기 힘들다. 여행을 하면서 젊
은 시절 즐겨 읽은 루소의 ‘고독한 산보자의 꿈’을 생각하다보면 자신의 참된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힘들지만 참을 줄 아는 의지와 새로운 사고를 창출하는 여행이 가장
좋은 여행이며 보람과 성취를 얻는다.
인생의 기쁨과 보람은 성공과 성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이바지하고 기여할
때 비로소 공존을 통한 온전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나눔이며 공존을 통한
나눔은 인간이 해야 할 가장 근원적인 그물망이다.
성공하고 성취해야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폐지를 줍는 노인이 더 어려운 사람을 위
해 겨울용 연탄구입에 기부를 하는 것이 나눔의 예이다. 궁핍하던 유년 시절을 생각하
면 밥 한 공기, 김치 한 종지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을 보낼 독거노인들 생
각하며 나눔에 인색하지말자.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덕숭산 자락 수덕사에서 본 가을풍경을 생각하면 인생에서
남겨야 할 것은 감사라고 생각한다. 산사에서 돌아와 일상생활에 복귀하였지만 항시
주변에 어려운 사람 생각하며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살고 싶다.
우리 모두 추운 겨울을 보내야하는 이웃들 돌보며 ‘저 사람은 정말 감사하며 살았던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남기고 살자.
중부매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11. 01.)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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