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의 추억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오래전, 괴산군 칠성면 소재 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과 강낭콩 심기를 했다. 근처에 일하
던 기사가 “선생님, 방금 만진 핸드폰이 없어졌네요.”라며 확인해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S란 아이가 가져갔고 부모가 이혼을 하여 아빠와 둘이 살며 정서불안 등으로 나쁜 짓을
자주했다.
교실로 돌아와 핸드폰을 돌려주게 하고 부교재, 학습준비물 등을 챙겨주며 각별히 사랑을
해주었다. 증평읍내 학교로 전근 후에도 아이들과 강낭콩 심기는 재미가 있었다. 각자 한
그루씩 주인을 정하고 관찰일기도 쓰도록 하니 학부모들도 좋아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강낭콩 관찰일기 덕분에 학교내외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글쓰기 상을 받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주말농장을 하며 각종채소를 직
접 길러서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상추와 쑥갓 외에 강낭콩이 익으면, 아내가 신이 나서 망태기에 담
아 흐뭇해하든 모습이 생각난다. 이처럼 강낭콩은 아이들과 추억도 있고 아내와 주말농장
의 즐거움 때문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가끔씩 아이들과 함께 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체육시간에 단체 경기를 하다 다쳐
서 말썽을 부린 녀석, 운동장에서 친구들끼리 싸워서 손가락을 다친 녀석들도 있었다. 어
떤 말썽꾸러기는 상급학교로 진학하여 길에서 만났는데 취업을 하면 선생님 찾아뵙겠다는
대견한 말도 했다.
그러나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3학년 담임 때 K란 여학생의 일기장에 ‘엄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하여 강낭콩으로 밥을 지었다.’는 내용에 눈물이 흘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강낭
콩을 먹는 계절이 오면 산촌학교의 S란 아이와 엄마를 잃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강낭콩 밥
을 지었다는 K란 여학생이 생각난다.
그때 담임을 하며 좀 더 잘 보살피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도를 했어야 했는데 아쉬
움이 남는다. 교사는 잘 달리는 아이들도 지도해야겠지만, 잘 따라 오지 못하는 아이에게
정(情)을 주고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99℃의 물은 뜨겁긴 하지만 끓지 않고 100℃가 돼야 끓는다. 끓는 물은 증기를 만들어 내
고, 증기는 자동차나 기관차가 달리는 힘을 갖게 만든다. 1℃가 모자라면 자기 역할을 못
한다. 학창시절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버티고 사회에 진출하는가 하면 중간에 좌절하여 달
리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교사는 1℃ 부족하여 펄펄 끓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아내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챙겨주
고, 지도해주면 그 학생은 평생 잊지 못하고 고마워 할 것이다. 교사란 아이가 처한 환경을
잘 이해해주고 감춰진 꿈과 재능을 찾는데 몰입해야한다.
교육의 기본적인 기능은 학생이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와주는 일이
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미래를 위한 씨앗으로 순수한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삶과 학습, 체험의 지혜라는 물을 뿌려 주며, 그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라.’는 인디언 격언이 생각난다. 칭찬보다 효과가 좋은 비타민은 없다는데 우리
모두 메마른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주고, 삶과 학습, 체험의 지혜를 펼칠 공간을 마련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학습과 체험의 장소인 학교는 그리움의 추억들이 웅성웅성하던 곳이다. 교실은 공부의 추
억, 급식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교사와 아이가 그곳에서 꿈과 눈물이 섞이고 시간이 멈춘
곳이다.
해마다 강낭콩 먹는 계절이 오면 그때의 아이들이 생각나고,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핀 화단
을 따라 교실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길, 그 길을 그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다.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3. 08. 26.)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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