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잡지 발표

초겨울에 생각하는 영혼의 빛깔

경산2 2015. 1. 31. 06:49

 

  초겨울에 생각하는 영혼의 빛깔

                             경산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만추의 계절이 멀어져가니 아쉬움이 많다. 중년에 들어선 후 부터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올해는 큰 비나 태풍이 없었기에 각종농사가 풍년이었고, 지금은 집집마다 가
을걷이와 겨우살이 김장도 끝을 내서 모두들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것 같다.

  사과와 배를 사각사각 소리 나게 베어 먹으면서, 영근 과일이 터지는 투명한 소리
에 마음의 주름을 살짝 펴고 그리운 벗을 생각해 보자. 한해를 보내는 12월, 그동안
미안했거나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의 메시지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지.

꼭 무엇을 한다기보다 빈 하루를 사색하며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한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뒤돌아본다고 하는데, 자신
의 영혼이 따라오는지 살피기 위해서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일상생활을 뒤돌아보자. 인디
언처럼 영혼이 따라 오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정신없이 산다는 말은 영혼 없이 산다
는 것으로, 세상이 각박하지만 영혼의 끈을 놓치지 말자.

  오실 오실 추워지는 요즘 길가 모퉁이 포장마차에서 보글보글 끓여내는 가락국수
아줌마처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요즘 같이 스산할
때, 마음속에 눌러 온 갈망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 우리 모두 뜨거운 물이 되면
어떨까.

뜨거운 물이 되어 마음을 열면, 진정한 벗을 얻는다니 낙엽 진 거리 걸으면서 한번쯤
뒤돌아보고, 따스한 영혼을 지니고 살자. 계절이 송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오는 백발
이야 작대기로 후려친다지만, 살아가며 느끼는 갑갑함은 무엇으로 막을까.

벌레 소리 애잔한 초겨울 밤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어묵 국물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친
구와 소주 한잔하면서 기쁨을 나누자. 우리 모두 고운 기억 닦아서 달빛으로 광을 내
고, 낙엽 긁어 태우며 향기를 맡아 보자.

소박한 풀꽃과 순수한 낙엽 타는 연기(煙氣)의 향(香)은 별빛과 함께 우리의 영혼을
빛낼 것이다. 혼자 빛나는 별이 없듯이, 서로가 함께 기쁨을 나누면 더욱 빛날 것이
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고 하는데, 너와 나 모두들
알맞게 누리자.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더 편해지려고 애쓰고 발버둥치는 동안 정작 우리가 얻은 것,
챙긴 것도 없이 귀한 벗만 멀어져간다. 귀하고 소중한 친구 잃기 전에 귀인(貴人)으
로 만들어 두자.

  모두들 분주하게 세상을 살고 있다. 이제는 여유를 누리며 살고, 살며시 영혼의 빛
깔에 다가서자. 농(濃)익은 영혼의 빛깔은 코스모스보다 곱고, 국화보다 향기로우며,
홍시보다 달콤하다. 초겨울을 지나며 누군가의 영혼 빛깔을 따스하게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인(知人)과 마주앉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 뚝배기와 밥
한 숟가락에 정겨움을 담자. 한해를 보내며 우리 모두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영혼의
빛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보자.

       불교  진각종 월간잡지 '법의향기'2014년 12월호(통권1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