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원(武溪園)과 부암동
경산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얼마 전,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함께 지낸 선후배 8명이 현직 역사교사로 근무하는
후배의 안내로 세종대왕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의 별장 터 부암동 무계정사(武溪精
舍)를 갔다.
무계정사는 안평대군 이용의 별장으로 한양의 북문 창의문밖 무계동(武溪洞)에 있
고, 무이정사(武夷精舍)라고도 하며 1만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선비들과 시를 짓고
교류하였다고 한다.
정자 앞의 바위에는 한쪽 면을 다듬고 그 윗부분 가운데 큰 현판모양으로 장방형 틀
을 판 평면에 ‘武溪洞(무계동)’이라고 새겼는데, 이 글씨가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
된다. 안평대군은 꿈에 도원(桃園)에서 놀고 난후 그곳과 같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정자를 세우고 글을 읊고 활을 쏘았다고 하며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안평대군은 조선 최고의 화가 안견에게 “내가 꿈에 무릉도원에 다녀왔는데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주문했고, 안견은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꿈속에서 여행
한 복사꽃 마을을 그려주었다.
바로 인근의 종로구 종로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전통문화공간 ‘무계원(武溪園)’
을 방문했다. 무계원은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된 곳이자 안평대군의 무계정사 뜻을
살리고자 무계원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무계원은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이자, 요정이었던 ‘오진암(梧珍庵)’을 종로
구가 부암동으로 이전해 복원하면서 화제가 됐던 곳이다. 무계원은 관광호텔 신축
으로 헐릴 상황에 처한 서울시 등록 음식점 1호 오진암의 대문, 기와, 서까래 등 자
재를 종로구가 안평대군의 숨결이 깃든 부암동 무계정사지로 이축·복원해 개원
했다.
마당에 오동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 오진암은 삼청각·대원각 등과 함께 서울 3대
고급 요정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오진암은 서울시 첫 등록식당으로 1900년대 초반
에 지었으나 식당(요정)으로 문을 연 것은 1953년이며 소궁궐로 불릴 정도로 건축
미가 뛰어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주먹 김두한의 단골집으로, 1972년 후반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만나 7·4 남북공동성명을 미리 논의한 장소다. 20여 년 전,
필자가 대기업에 근무하며 해외에서 중요거래처 인사가 왔을 때 오진암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동사무소 우측 골목 안에는 빙허(憑虛) 현진건의 고택터가 있는데 잡풀만 무성했다.
소설가 현진건은 동아일보 기자로 1935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
을 했을 때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발표하여 감옥에 가게 되었고 폐결핵으로 별
세했다.
안평대군의 무릉도원을 꿈꾼 무계정사, 무계원, 오진암, 삼청각, 대원각, 길상사 등
을 생각해보았고, 근처의 ‘윤동주 문학관’, 창의문, 백사실 계곡 등의 문화 활동 방
문은 삶의 활력을 주었다.
대학시절 한솥밥을 먹던 전공이 다른 선후배들과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무계원과 부암동 등의 문화탐방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오래전부터 부암동
일대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다가 기숙사 선후배들 덕분에 소상한 안내를
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글을 벗 삼아 쓰는 무명작가로 이렇게 좋은 문화명소를 보며 문장 몇 줄이라도 남
기니 가슴이 시원하다. 우리 모두 역사의 현장과 문화재 방문을 통하여 자랑스러
운 우리문화를 널리 알리며 살자.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5. 02. 24.)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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