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情談) 나누며 흙길을 걷자
경산 류 시 호 시인/ 수필가
만산에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 ‘현대문학신문’을 발간하다는 소식에 먼저 문학인의
한사람으로 축하를 드린다. 전국의 유명 도서관이나 관공서까지 배포하는 현대문
학신문이 크게 발전하기를 바라며 본인도 졸필이지만 필진으로 참여하게 되어 기
쁘다.
우리 현대문학신문이 더욱 발전하기를 곰곰이 생각하며 지난 주말 북한산 ‘우이령’
길을 걸었다. 이 길은 경기도 양주시와 서울의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작은 흙길
도로이다.
소귀고개로 알려진 우이령 길은 오르막이 소 잔등처럼 부드럽고, 친구나 연인, 부부
가 손잡고 맨발로 걷기에도 부담이 없다. 이 길은 무장공비 사건으로 출입이 금지되
었다가 몇 년 전부터 공개되었다.
아카시아 향기 날리는 좋은 계절에 산길은 정서적으로 좋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바위산 ‘오봉(五峯)’이 멋지게 자리 잡아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우이령 길을 배경으
로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리는 이흥렬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비운을 표현하며 ‘
바위고개’를 작사, 작곡을 했다고 한다.
우이령 길은 41년간 통행이 금지되어 나무와 풀 등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다.
잘 다듬어진 길에 푸른 소나무와 참나무 야생화 등의 환호를 받으며 걷다보니 한 폭
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았다. 산개나리와 더불어 신갈나무,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물오리나무 등 저마다 그려내는 짙은 녹음은 눈이 즐거웠다.
오래 전 ‘문경새재’를 갔었다.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
령(鳥嶺)이라고도 한다. 이 길도 맨발로 걸을 수 있기에 몇 번이나 다녀왔다. 길 중
간에 마련된 쉼터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
러 가다가 쉬던 주막자리가 보인다.
울창한 숲속의 고요함에 호흡을 가다듬다보면, 오색딱따구리 우짖는 소리, 쓰르라미
소리와 냇물 흐르는 소리가 어울려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맑고 깨끗한 계곡물을
지나다보면 멋진 마당바위를 만나게 되고, 궁예가 왕건이 내린 칼을 받은 연속극 촬영
지를 만나게 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과 당단풍, 신나무, 굴참나무, 산겨릅나무 등 짙은 녹음과 밤
나무 향기가 나그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허리를 휘감은 깨끗한 공기와 한
줄기 시원한 바람, 좋은 계절이 전해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도보여행을 하며 영감을 얻
었다고 한다. 루소도 유럽을 도보여행하며 ‘고독한 보행자의 상념’ 등의 책을 쓰기
도 했다.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생활 속에서 걷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재는 속도의 시대라지만, 걷기는 인간이 세상과 대화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며
중요한 수단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부드럽고 혹은 거칠고 이따금 발바닥의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 흐름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성공하려면 열심히 일하고, 인생을 즐기며 고요히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모두 고요히 자기를 들여다볼 시간을 갖자. 무거운 몽근짐을
저마다 이고 지고 가야 하는 게 인생길이다. 푸름이 짙어가는 계절, 누군가의 마음을
따스하게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가족이나 친구와 정담(情談) 나누며
흙길을 걸어보자.
현대문학신문 창간호(2013.8.12)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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