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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과 중명전(重明殿) / 류 시 호 시인 ․ 수필가

경산2 2016. 2. 28. 20:34


   대한제국과 중명전(重明殿)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지난 늦가을 비오는 날,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던 선후배들이 덕수궁 정문에서 만나 역사를 전공한

후배 K선생의 안내로 덕수궁과 정동 길을 노란 은행잎 밟으면서 문화탐방에 나섰다. 이곳은 필자가 교사시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대한제국’에 대한 연수를 받으며, 경기대학 안창모 교수와 한국산업기술대학 서영희 교

수의 강의를 들은 적 있지만 K선생의 문화해설에 새로움을 느끼며 다시 역사의 흐름을 짚어보았다.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3년간이며, 격변하는 시기 동서양의 강대국 사이에서 노력함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국호를 변경하였다는 점에 감회가 새롭다. 고종은 정조의 정치

이념을 계승하고 다산의 여유당집을 즐겨 읽었으며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를 폐지하고 개화파를 등용했다.

서양문물을 좋아하고 커피를 양탕국이라하며 즐겨 마셨고, 최초교회 정동교회를 설립했다.


정동에 있는 중명전은 120년 전 대한제국의 황실 도서관으로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한

서양식 전각으로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되었다. 그러나 1905년 11월 18일 새벽,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이 체결되었다. 


 런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에 많은 사람

들이 방문하고 있다.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해 우호적인 나라에 호소를 했고, 황실고문

헐버트에게 이 조약이 무효임을 미국 정부에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또한 대한제국과 수교를 맺은 모든 당사국들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는 일을 헐버트에게 요청했다. 한편 국

제분쟁을 처리하던 헤이그 만국공판소에 이준, 이위종, 이상설을 특사로 파견했다. 그러나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일제의 침략을 호소하려 했지만 회의 참석이 거부되면서 좌절되고 이준 열사는 순국했다. 국권 회복

을 위한 외교활동을 펼치는 것을 알게 된 게 일제는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다.


국가적 큰 사건이 많았던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묘인 정릉이 있었기에 정동으로 부른다.

고종은 이곳에 신식학교, 서양종교, 외교타운으로 미국공사관, 프랑스공사관, 러시아공사관, 독일영사관, 이탈

리아영사관 등을 설치하였다. 


정동은 선교와 교육기지로 정동교회, 러시아 정교회, 영국 성공회와 이화학당, 배재 학당 등 신식학교가 세워졌

고, 외교타운을 정동으로 모운 이유는 그 당시 대한제국이 관리하기가 편리해서였다. 덕수궁과 중명전, 그리고

정동을 돌아보니 세계화에 대응하고자 노력한 고종황제의 열정이 느껴진다.


가을을 보내며 문화탐방에 함께 해준 대학기숙사 선후배들 덕분에 대한제국의 역사를 새로 정립하여 기분이 좋

다. 우리 민족의 열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새로운 희망은 계속 생길 것이고, 우리 모두 그 꿈을 향해 쉼 없이 달

려야겠다.


덕수궁 주변을 걷다보면, 대한제국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고, 답답한 긴 터널에서 벗어나 역동하는 지금의 우리

나라를 보면 너무 감사하다. 우리 모두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자.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6. 01. 14.)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