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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시의 계급을 아시나요?

경산2 2006. 5. 9. 21:46
화요일 저녁이군요. 내일은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하지요. 비가
많이 오면 누구나 쓸쓸해지고, 때로는 허탈하며 성의학을 전공한 의사의
칼럼에는 섹스의욕이 더 생긴다하더군요. 그런데 군주시대 궁녀들과 내시
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판내시부사 김처선과 영화 `음란서생`에 나
오는 내시의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답니다. 나두 궁녀에 대
해서는 자료를 좀 갖고 있지만 내시는 처음이랍니다.

내시는 ‘왕을 보좌하는 비서관 역할을 하던 거세된 남자 관리’를 가리키
며 이는 조선시대의 경우이고 고려시대에는 환관과 내시가 구분되어 있었
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내시는 환관(宦官), 내관(內官), 내수(內 )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더군요.

서양에도 내시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싸리쓰’ 그리
스어로는 ‘유누코스’로 표기하는데 이는 ‘침실(寢室)을 지키는 자’라
는 뜻이고,

내시제도는 기원 전의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로마제국, 인도의 무굴 제
국과 터키의 오스만투르크 제국 등 서남아시아, 이집트, 에티오피아를 비
롯한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일부 국가, 유교문
화권인 중국과 한국, 베트남에서만 존재했던 특이한 제도랍니다.

한국에서의 내시에 대한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나오
는 ‘흥덕왕 원년(826) 환수(宦竪)’라는 것으로 확인되며 고려시대의 내
시는 고려 중기 이전까지만 해도 과거에 급제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
다네요.

유명한 사립대학인 문헌공도(文憲公徒)를 세운 해동공자 최충(崔忠)의 손
자 최사추(崔思諏), 주자학을 도입하고 국립대학인 성균관의 진흥을 꾀한
안향(安珦) 등은 학문적·관료적 능력을 인정받아 내시직을 지낸 인물이
랍니다.

고려의 내시는 여러 근시(近侍)들과 함께 왕의 행차에 동행하는가 하면,
왕명의 초안 작성, 유교경전 강의, 왕실재정 관리 전반을 담당하였으며
때로는 국왕을 대신하여 궐 밖의 민정을 살피기도 했다는군요.

거세 시술은 주로 비 오는 날 천둥번개가 칠 때 많이 했으며 그것은 수술
로 인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이 비명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군요.

내시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위해 언제라도 대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
야만 했기에 내시로서의 자질시험 또한 주로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데 집
중됐으며

이들이 맡은 주요 업무는 대전(大殿), 왕비전, 세자궁, 빈궁(嬪宮) 등에서
음식물 감독, 왕명의 출납, 궁궐 문지기, 궁궐 안 청소 등이었으며 또 왕
실 직영 잠실(蠶室)에 파견되어 누에를 치는 잠모(蠶母)를 관리하는가 하면,
왕릉을 보살피고 다양한 업무를 맡은 내시부의 정원은 16개 관직에 140명
이었다네요.

내시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러나 내시도
일반 사대부나 평민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자녀를 두고 결혼생활을 했으며
내시는 성적으로 불구자였기에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고, 그들은 양자(養
子)제도를 통해 대를 이을 수 있었답니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님들 지치지 않게 건강관리 잘 하
세요.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