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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현마을과 다산 초당
경산2
2008. 1. 28. 13:50
오래전 해남과 진도를 여행 한적이 있는데 틈만나면 강진과 보길도를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다가 지난주 시간을 내서 다녀왔답니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이지요.
다산의 고향이며 묘지가 있는 팔당호의 마현마을은 가끔씩 들리지만, 눈비가
많이 내린 날 전남 강진(땅끝마을 근방)의 첫방문은 썰렁했답니다. 계절 탓이
겠지만, 너무 적적하더군요.
내가 늘 존경하는 인물이 다산인데, 다산 정약용은 조선조의 위대한 학자요 정
치가였고 다산의 일생은 파란 만장했는데 일찍이 문과에 급제, 경기도 암행어
사 병조참의에 올랐지만 가톨릭 귀의 여부를 둘러싼 문제로 좌천과 복귀를 거
듭했지요.
지금 나오는 연속극 '이산'(정조의 본명)에도 나오지만,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대왕에게 총애를 받은 다산은 승지와 두번째 병조참의를 지냈으나 정조가 세상
을 떠나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지요.
다산은 서울근교 팔당땜 인근 양수리 가는길 마현마을이 고향이고, 팔당호에서
가장 멋진 위치의 마현마을의 새벽 물안개는 첫사랑을 생각하게 한답니다. 그곳
에 가면 다산의 흔적을 가까이 볼 수가 있지요.
이렇게 다산의 고향인 마현마을은 가끔씩 갔지만, 전남 강진은 거리가 멀기에
좀처럼 나서기가 어려웠지요. 한겨울에 눈비가 내린 날 갔더니 썰렁하고, 볼 것
은 없지만, 200 여년 전 유배지에서 보낸 다산의 심정을 읽는 것 같더군요.
다산유물전시관에는 다산의 가계는 물론 강진 거주 역사와 저술까지 모든 것이
전시돼 있으며 다산초당. 18년 유배 중 후반 10년을 보냈던 곳으로 500여 권의
저술이 여기서 이루워졌답니다.
초당은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숲 속에 있으며 마을에서 걷자면 10분
거리. 숲 그늘 속에는 동암 서암 등 건물 세 채가 약천(샘물) 연지석가산(연못)
다조(차를 끓이던 바위) 등의 유적과 함께 보존돼 있더군요.
강진만이 잘 보이는 누정 천일각은 여기서 스무 걸음 거리. 그 옆으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800m)이 있고, 백련사는 다산에게 차를 가르쳐 준 혜장 스님이
주석한 고찰이랍니다.
만덕산 아래 깊은 차나무 숲은 중국에서 가져온 차나무를 여기서 재배했고, 후
일 지리산 쌍계사로 옮겨 야생 차밭을 이루워서 지리산 쌍계사 녹차가 유명하지
요.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
의 호로 썼답니다. 다산은 1818년 57세로 강진에서 유배가 풀려나 고향 마재(마현
마을)로 돌아가 183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지요.
님들 즐겁고 신나는 한주가 되시길,(사진은 나의 프래닛에 있다우)
싶었는데, 기회가 없다가 지난주 시간을 내서 다녀왔답니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이지요.
다산의 고향이며 묘지가 있는 팔당호의 마현마을은 가끔씩 들리지만, 눈비가
많이 내린 날 전남 강진(땅끝마을 근방)의 첫방문은 썰렁했답니다. 계절 탓이
겠지만, 너무 적적하더군요.
내가 늘 존경하는 인물이 다산인데, 다산 정약용은 조선조의 위대한 학자요 정
치가였고 다산의 일생은 파란 만장했는데 일찍이 문과에 급제, 경기도 암행어
사 병조참의에 올랐지만 가톨릭 귀의 여부를 둘러싼 문제로 좌천과 복귀를 거
듭했지요.
지금 나오는 연속극 '이산'(정조의 본명)에도 나오지만,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대왕에게 총애를 받은 다산은 승지와 두번째 병조참의를 지냈으나 정조가 세상
을 떠나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지요.
다산은 서울근교 팔당땜 인근 양수리 가는길 마현마을이 고향이고, 팔당호에서
가장 멋진 위치의 마현마을의 새벽 물안개는 첫사랑을 생각하게 한답니다. 그곳
에 가면 다산의 흔적을 가까이 볼 수가 있지요.
이렇게 다산의 고향인 마현마을은 가끔씩 갔지만, 전남 강진은 거리가 멀기에
좀처럼 나서기가 어려웠지요. 한겨울에 눈비가 내린 날 갔더니 썰렁하고, 볼 것
은 없지만, 200 여년 전 유배지에서 보낸 다산의 심정을 읽는 것 같더군요.
다산유물전시관에는 다산의 가계는 물론 강진 거주 역사와 저술까지 모든 것이
전시돼 있으며 다산초당. 18년 유배 중 후반 10년을 보냈던 곳으로 500여 권의
저술이 여기서 이루워졌답니다.
초당은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숲 속에 있으며 마을에서 걷자면 10분
거리. 숲 그늘 속에는 동암 서암 등 건물 세 채가 약천(샘물) 연지석가산(연못)
다조(차를 끓이던 바위) 등의 유적과 함께 보존돼 있더군요.
강진만이 잘 보이는 누정 천일각은 여기서 스무 걸음 거리. 그 옆으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800m)이 있고, 백련사는 다산에게 차를 가르쳐 준 혜장 스님이
주석한 고찰이랍니다.
만덕산 아래 깊은 차나무 숲은 중국에서 가져온 차나무를 여기서 재배했고, 후
일 지리산 쌍계사로 옮겨 야생 차밭을 이루워서 지리산 쌍계사 녹차가 유명하지
요.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
의 호로 썼답니다. 다산은 1818년 57세로 강진에서 유배가 풀려나 고향 마재(마현
마을)로 돌아가 183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지요.
님들 즐겁고 신나는 한주가 되시길,(사진은 나의 프래닛에 있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