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가을
창덕궁의 가을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지난 8월 초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수를 받으며 창덕궁 특별전시회를 관람
하였다. 창덕궁과 후원(비원)을 가끔씩 가보았지만 이번 연수를 통하여 세세히
배우고, 현장학습을 통하여 꼼꼼히 챙겨보니 궁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되었다.
창덕궁은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주로 정치를 하고 기거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이용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광
해군이 창덕궁을 제일 먼저 복원했기 때문 원래의 궁궐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 뒤로 300년간 조선왕조의 중심이 되는 정궁(正宮)으로 사용하였으며 동궐
(창덕궁)은 왕이 정무를 보았고, 서궐(창경궁)은 성종이 살아계시던 세 분 선대
왕후의 거처로 창경궁을 지었다고 한다.
경복궁이 질서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과의 조화를 기
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덕궁 내전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300년이 넘는 오래된 나무들로 울창한
숲과 연못이 있고, 자연경관을 살린 크고 작은 정자들이 있다. 가회동 언덕에서
창덕궁을 보라보면 높고 청명한 하늘아래 설악산, 내장산의 단풍보다 더 아름답
게 고운 빛깔로 물드는 나무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터키의 톱카프 궁전, 영국의 버킹
검 궁전, 독일과 이탈리아의 궁전, 그리고 교황이 거주하는 로마의 바티칸 등을
돌아보았지만,
창덕궁의 후원처럼 자연미를 살린 멋진 정원을 가진 궁전은 없었다. 성균관대학
후문 쪽 와룡공원에서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를 보라보면 도심 한복판에 멋진
고궁과 숲이 있기 때문 감탄이 저절로 난다.
한 많은 삶을 살다간 영친왕비 이방자여사가 기거한 낙선재 한옥과 종묘의 울
창한 숲에도 가을이 내리고 있다. 또한 정문에서 담장을 따라 창경궁으로 가다
보면 시민들을 위하여 가꾸어 놓은 작은 공원은 바쁘게 사는 분들을 위해 가을
을 느끼기에 충분한 나무들이 단풍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다.
부쩍 높아진 가을 하늘 양떼구름이 뭉글뭉글 흐르고, 폭우와 무더위로 보낸 여
름이 가고 나니 몸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도 달라졌다. 가을은 가슴 싸한
계절이 아닌가.
가장 행복한 추억을 이 가을에 만들어 보자.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고, 하늬바
람에 여러 빛깔로 채색된 코스모스가 살랑거리며 가을을 노래한다. 이제는 한기
가 느껴져 따뜻한 이불을 챙겨야겠다.
청명한 가을, 우리의 문화를 느끼기 위해 신라, 가야, 백제, 고구려, 조선의 흔
적이 있는 고궁이나 왕릉, 박물관, 고찰(古刹) 등을 찾아 길을 떠나보자. 온몸
으로 바람과 자연을 맞이하면 가슴에서 시작된 짠한 울림이 잠자고 있던 정서의
샘을 자극해 줄 것 같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고궁과 문화재에서 가을을 찾아
보자.
중부매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1. 09. 20.)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