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과 음식문화
대장금과 음식문화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오래전 연속극 ‘대장금(大長今)’을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고, 우리의 의학과 음식이
자연에서 얻은 대단한 보고(寶庫)임을 알게 했다. 그 덕분 중국, 일본, 동남아와 중
동의 나라까지 시청률이 높았고, 한류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장금’(長今)이는 조선조 중종시절, 남존 여비의 봉건적 체제하에서 무서운 집념과
의지로 궁중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조선 최고의 의녀(醫女)가 되어 조선시대 유일한
임금 주치의가 되었다. 대장금은 음식이라는 전통문화와 한방의학을 통한 국민건강
을 증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여름 국립고궁박물관 연수 때, 경인교육대 역사학 김호 교수가 말하기를 우리
의 한의학은 성리학을 근거로 하여 기(氣)의 사상과 리(理)의 철학을 합쳐 자연과 인
간의 삶에 절대 이념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성리학에서는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색
을 멀리하고, 음식을 절제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분노(스트레스) 하지 말 것을 강조
했다.
현재 우리의 밥상은 2000년의 역사를 가졌다는데, 기자가 우리나라로 와서 ‘기자조
선’을 세울 때부터로 본다. 그 후 실크로드를 통하여 참기름, 마늘이 들어 왔다. 조선
시대 군왕은 검소한 5첩 밥상을 사용했으며,
인조부터 영조시절까지 청나라로부터 서양문물이 많이 들어왔고, 음식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세종시절에는 우리가 일본에 음식문화를 지도했는데, 정조 시절에는
일본을 통한 새로운 서양 음식문화가 유입되기도 했다.
연수를 받으며 성리학에 의한 조선의학과 음식에 담긴 뜻을 배우고 직접 실습까지
한 후 시식을 해보니 우리 선조들의 음식에 대한 혜안(慧眼)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
었다. 궁중음식의 권위자 대전보건대 김상보 교수에 의하면, 명월관 음식은 궁중음식
이 아니라 일본식 음식이며 인스턴트 궁중음식이라고 했다.
세자시절부터 군왕은 검박해야한다고 가르쳤고, 조선후기 정조도 평소에는 5첩 밥
상으로 식사를 했다. 소는 농사일에 사용하기 때문 임금도 소고기를 못 먹었으며, 종
묘제사 때와 특별한 날만 소를 잡았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음식용어 중 ‘수라’라는 말은 몽골 언어이고, ‘신선로’는 청나라 음식
으로 열구자탕이며, 술은 따뜻하면 주독이 있기에 차게 마시도록 했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가교이며, 예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 때 그 음식은 더 맛이 있
다고 하니 이왕이면 풍경을 담아 맛을 내면 어떨까한다.
오늘날 우리의 공산품이 세계적인 경쟁력에서 최고로 대우받고, 스포츠, 드라마, K팝,
한식 등 한류문화도 전 세계인들로 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우리 선배들은 순발력과
응용력을 발휘해 오천년 역사의 숱한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온 것 같다.
우리 모두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 향기 나는 도덕적 품성을 지키자. 또한 선진국으로 갈수 있게 열심히 힘을 모으
고, 가슴 벅차고 행복한 날들이 지속되도록 노력하자.
중부매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02. 20.)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