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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과 용주사

경산2 2012. 6. 24. 06:35

 

  수원화성과 용주사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여러해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한 수원 화성(華城)을 간적이 있다.
정조가 심혈을 기울어 건설한 신도시라고해서 세심하게 보았다. 지난 겨울방학
박물관 연수를 받으며 정조대왕 기념사업회의 전문가에게 정조의 정치와 수원
화성이라는 강의를 듣고 보니, 화성이 평시와 전시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성곽임
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군왕이 된 후 12년 동안 아버지의 묘 이장을 준비하였고, 고모부 박명운의
상소를 계기로 조선 3대 명당이라는 수원부 화산에 현륭원을 조성하였다. 조선
3대 명당은 태조의 묘와 여주 영릉, 수원 융건릉으로 정조는 사도세자를 모신 현
륭원을 풍수에 맞게 조성을 했다.

24살에 즉위한 정조는 37살까지 자식이 없었으나, 융릉을 조성한 후 후궁한테서
순조가 태어났는데 아버지 묘소를 잘 모신 덕분일까.

  정조는 융릉을 보호하려고 용주사를 창건했다. 조선은 유교 국가지만 이례적
으로 불교 사찰을 건립했고, 용주사를 수사찰(首寺刹)로 승병 징발 권한을 주는
도총섭 칭호를 사용하도록 했다.

절 안에는 사도세자 위패를 봉안하고 스님 2명에게 하루에 6회씩 제를 지내도
록 했다. 이슬람교가 하루 5회 기도하는데, 그것보다 더 많게 지냈으니 정조의
마음을 알만하다.

  아이들 어릴 적 융건릉과 용주사를 가끔씩 갔었는데, 봄이 되면 용주사 가는 길이
화사한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었고 그 길을 달리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효성이 가
득한 용주사를 둘러 본 조지훈은 시 ‘승무’를 지었다 한다.

  수원 화성은 아버지 묘소 때문에 그곳에 거주하던 백성을 이주하기 위해 만들었
지만, 결과적으로 200년 전에 체계적인 신도시를 건축하게 된 셈이다.  정조는 화
성에 600만주의 뽕나무를 심고 누에치기로 잠업과 종이산업 육성 등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약용, 김홍도, 채제공 등 당대 최고지식인들이 아름다운 건축과 도시개
발에 참여하였는데, 이런 경험들이 우리가 세계적으로 건설과 토목공사를 잘하
는 뿌리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유교와 성리학이라는 문화 배경과 높은 교육열이 어우러져 세계를 선도
하고 있다. 선조들이 물러 준 고급문화를 소중히 간직하면서 창조적인 생각으로
꿈을 키우자. 인생은 끝없이 도전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자신을 성숙시
키면서 꿈을 키워야 한다.

  자식이나 형제에게 노엽고 서운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나 왕세자든 평민이든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서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산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미웠지만 큰 꿈을 품
고 인내하며 버티어 군왕이 되었다.

이상이란 높을수록 좋고 우리의 인생에 사랑, 꿈, 도전은 매우 중요하며, 꿈이 있
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다.

  우리 모두 자신들의 꿈을 향하여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면, 자신이 목표하는
성공의 열매가 열릴 것이다. 고난과 실패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라고
하는데, 우리 모두 정조대왕처럼 미움, 집착, 분노를 내려놓고, 꿈을 향하여 도
전하며 살자.

      중부매일 칼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05. 17.)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