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와 제사문화
종묘와 제사문화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지난 5월 첫째 일요일,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 종묘(宗廟)에서 년 중 제일 큰 ‘종묘대제’ 행사가 있기에 참석했다. 이날은
경복궁을 출발 종로를 거쳐 종묘까지 임금과 신하의 행차를 볼 수 있고, 악기, 노
래, 춤으로 구성된 종묘제례악을 감상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종묘는 고구려 고국양왕 9년에 처음 보였으며, 신라에서는 5묘제, 고려에서는
7묘제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7묘 제도를 따르다가 중기 이후부터는 치적이 많
은 왕은 7대가 지나도 정전(正殿)에 그대로 모셨으며, 그 밖의 신주는 영녕전
(永寧殿)으로 옮겨 모셨다. 정전은 국보로 영녕전은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와 함께 2001년에 유네스코에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되었고, 외국인 건축가들이 오면 종묘는 동양의 파르테논신전이라
고 자랑한다.
프랑스 국영방송인 라디오 프랑스는 종묘 제사 때 사용하는 종묘제례악을 ‘존엄성
가득하면서 때로 성스럽고 세련되고 숭고한 음악이다.’이라고 극찬을 했다.
종묘의 신주는 네모난 직육면체로, 상하 사방에 혼이 드나드는 규(竅)라는 구멍을
내서 만든다. 민가(民家)의 신주는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고, 길이는 여덟 치, 폭은
두 치가량이고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지게 만들었다.
누구나 우주 자연의 변화와 천재지변을 겪을 때는 공포감을 품게 되어 삶의 안식과
안락을 기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천지 만물에 대해 신비감과 생명존중의 감사를
표하는 신주와 제사가 생기게 된 것 같다.
백성들의 제사 시간은 돌아간 날의 첫 시각인 대략 밤 11시 30분에서 12시(해시
말에서 자시 초) 사이다. 근래에는 저녁 시간에 지내는 풍습이 생겼는데, 반드시 돌
아간 날 저녁, 어둠이 짙은 뒤에 모셔야 될 것이다.
예(禮)는 정(情)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으로 시간보다는 성의가 더 중요한데, 서
양에도 없는 신주와 제사문화,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에 자부심을 갖자.
우리의 제사문화를 보면 왕가인 종묘의 제사를 본받았고, 사직의 신주를 보고 집
집마다 신주도 모신 것 같다. 종묘의 제사 때는 음악을 사용했지만, 가정의 제사에
는 엄숙하고 조용하게 모신다.
조선시대는 왕가나 민가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고조까지 4대를 봉사(奉祀)하게 했
지만, 이제는 본인 기준 할아버지까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한자리에 오래 두면 먼지가 쌓이듯이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각
종 먼지가 쌓이게 된다. 국보이며 보물이고 유네스코가 인정한 문화재인 종묘, 종묘
제례악, 제사문화 등은 잘 가꾸고 보존해야겠다. 그러나 오래된 관습에 얽매이지 말
고 제사문화도 국제화 시대에 맞게 거듭나야겠다.
종묘제사와 일반가정의 제사를 보면, 천재지변의 두려움과 삶의 안식 때문에 제사
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삶이란 완벽한 보다는 어색함과 부조화로 가
득한지도 모르겠다.
매일같이 분주하게 사는 요즘, 상대방을 배려하고, 미움, 분노, 염려를 가슴에 담지
말아야겠다.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도 살아있는 자손들의 행복함을 유지하도록 위한
것 아닐까 한다. 행복의 본질은 감사와 즐거움이라는데 우리 모두 항상 최선을 다하
고 만족스럽게 살도록 노력하자.
중부매일 칼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07. 27.)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