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잡지 발표

고구마와 밤(栗)이 있는 겨울 풍경

경산2 2014. 2. 18. 11:33

    고구마와 밤(栗)이 있는 겨울 풍경

                                           경산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겨울철인 요즘은 아침 식사를 호박고구마와 양배추, 부로콜리, 파프리카, 양상추 등
과 곁들이면 부담도 없고 좋다. 계절에 따라서 감자, 옥수수, 밤, 단 호박, 인절미 등
으로 바꿔가며 아침을 건강식으로 한다.

요즘은 속이 노란 고구마, 자주색 고구마까지 개발이 되어 맛도 좋고 먹을거리가 다양
하다.  필자가 어릴 때에는 물고구마와 밤고구마를 먹었고, 소죽을 끓이며 할아버지가
구워 주시는 군고구마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어른들은 지금과는 달리 고구마가 이른 봄 보릿고개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 구황식품이
었고, 고구마 두세 개를 먹으면 배가 든든해 한나절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기에 서민
들은 고구마를 곡식 못지않게 귀히 여긴 것 같다.

  지난 가을에 아내와 친구네 부부와 같이 밤 따러 갔다. 야산의 밤나무는 씨알이 작았
지만, 줍는 재미는 쏠쏠했다. 따온 밤은 주변 친지에게도 나누 주고 가족들과 맛있게
먹었다.

산밤은 알은 작아도 생것을 깎으면 달고, 구우면 고소하고 맛이 좋다. 결혼식 폐백 때에
절을 받는 어른들이 신부에게 대추와 밤을 던져 주는 것을 본다. 대추와 밤은 자식을 주
렁주렁 빨리 낳으란 뜻으로 선조들의 해학(諧謔)을 느낀다.

  작년에는 충주의 소태 밤과 공주 밤을 구입해서 이웃과 친구들도 주고, 저장고에 넣
어두고서 가족들과 먹고 있다. 밤과 대추는 차례나 제사상에 꼭 등장하는데, 밤은 영원
함을 추구하며 대추는 자손 번영을 기원한다.

또한 조상을 모시는 위패와 신주는 밤나무로 만들고, 차례 상에서 밤은 대추 바로 옆자
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우리의 조상들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생밤은 애주가의 겨울 안주로 그만이며, 밤에 많이 있는 비타민 C는 알코올 분해를 도
와 숙취를 덜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겨울 철 일본을 여행하다가 밤으로 만든 간식
종류가 다양함을 보았다.   

고구마와 밤은 우리의 밥상에 건강식으로 탄생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 땅 아래
로 조금씩 내려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열매에 반영한다. 인간도 마찬가
지다.

매일 배우고 고통 받고 열정에 빠지고 실망하면서 자신을 채워 나간다. 이 과정에서
고통과 가능성, 지혜가 인간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닐까 한다. 뜨거운 햇빛 아래 오곡백
과가 익어가듯이 해를 거듭하면서 사람들 감정도 내밀하게 영글어진다.

  김칫독에 김치 익는 소리와 문풍지에 떨리는 차가운 바람소리를 들으면, 강한 바람
과 빙판길에 출퇴근하는 가족들이 아른거린다.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우리 인생인데,
분주한 일상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휘영청 밝은 달밤에 자연과 삶을 즐기며 살자.

여울 건너 마을에 개 짖는 소리 청명하게 들릴 때 김치전에 막걸리, 고구마와 밤 삶아
서 자리를 만들어 보자. 우리 모두 가족들과 도란도란 대화 나누며 겨울을 보내자. 그
리고 봄을 기다리자. 따뜻한 삶의 대화 속에 봄도 희망도 싹이 틀 것 같다.

                월간잡지 좋은만남(2014. 2. 통권 123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