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신발신고 봄 길을 걷자
고운 신발신고 봄 길을 걷자
경산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대학을 다닐 때, 총장배 교내 논문발표대회가 있었다. 주제는 ‘새마을운동과 대학생의
역할’ 이었는데, 결승까지 진출하여 상패를 받았고 부상으로 상금을 받았다. 친구들에
게 밥을 사고, 남은 돈으로 구두 방에서 부츠를 맞추었다. 신발이 귀하던 시절 고이간
직하며 오래두고 신었다.
어느 해 겨울방학 전국의 UN동아리 대학생들이 속리산에서 모여 세미나와 단합대회
를 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니 눈이 엄청 쌓였는데, 룸메이트들과 문장대로 산행을
했다. 그 당시 등산화나 아이젠은 없었고, 신사화나 운동화였는데 필자는 신사화를 새
끼줄로 동여 메고, 정상까지 올라간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무모한 행동을 한 것 같다. 요즘이야 산행을 하
면 등산화를 신고, 운동을 할 때는 스포츠화를 챙기는 게 당연하다. 또한 주말 농장에
갈 때는 고무신과 장화까지 가져간다. 신발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 한 시절, 우리의 옛 조상들은 그 당시에 적합한 신발을 만들어 사
용했다. 신발을 만드는 갖바치는 비단과 가죽, 광목, 모시에 쌀풀을 먹이고 햇볕에 말려
빳빳한 배악비(가죽신 안쪽에 붙이는 헝겊이나 종이로 신을 질기게 해줌)로 아가씨용
꽃신을 제작했다.
귀부인에게는 구름무늬 당혜(여성용 가죽신)와 당초(덩굴)무늬 당혜를 신겼다. 신발이
빨리 닳는 남자에겐 배악비를 두툼하게 붙여 튼튼한 태사혜를 만들었다. 나주의 정촌
고분에서 발굴된 백제의 금동신발은 연꽃무늬와 도깨비 얼굴이 새겨져있어 1500년 전
부터 선조들의 신발 만드는 솜씨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달란트’를 갖고 있다. 천재성이 아니면 손재주나 솜씨, 조그마한 재능이
라도 갖고 있다. 갖바치도 그 시절 최고의 재능을 가졌기에 신발을 제일 잘 만들었다. 국
토가 좁고 자원이 빈약하지만 우리 국민은 창의적 재능과 열정을 가진 국민으로 손재주
가 세계에서 최고다.
또한 낙천성과 솔직함, 열정과 개성, 친절한 민족이 아닐까 한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유
교적 전통과 억압적 근대화의 역사를 살았지만, 우리 민족은 열정이라는 끼를 갖고 있어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갑자기 꽹과리와 북소리를 들으면 신명이 살아나는 재
능과 열정의 끼를 지니고 산다.
우리는 그동안 창의적 재능과 열정, 달란트가 있었기에 주변 강대국들 틈에서도 잘 버티
어 왔다. 갖바치 기술을 전수받아 우리는 명품 신발을 만들고,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11
번의 종합우승 기술을 자랑한다. 모두가 끈기 있게 노력을 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
었으며 무한경쟁 시대 창의적 재능은 중요한 자산이다.
우리나라는 4년 연속 무역 1조 달러를 돌파했고, 작년 한국의 수출 상대국이 236개, 수입
상대국은 238개로 유엔(193개국)이나, FIFA 회원국(207개)보다 많고, 미국의 코카콜라보
다도 더 많은 나라에 한국 상품을 팔고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갖춘 국가를 의미하는
‘30―50 클럽’에 가입한다. 전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30K)를 넘고, 인구도
5000만 명(50M)이 넘는 국가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뿐이다. 세계 10대
무역대국, 스포츠 강국, 한류문화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지만 이제는 치열한 경쟁을 조금
지양하고 천천히 가면 좋겠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으니 우리 모두 속도를 조금 줄이고 걸으면서 생각해보자. 다산
정약용은 “걷는 것은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라고 했다. 입춘도 지났고 우수가 눈
앞인데 우리 손으로 만든 최고의 신발을 신고, 맑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걸어보자.
따사로운 햇빛은 봄바람 소리에 휘파람 불고, 남쪽에서는 산수유와 매화꽃이 즐거워 흥
얼거린다. 봄의 시작, 속도를 늦추고 여유롭게 고운 신발신고 아지랑이 따라 우리 모두
나들이 가자.
대구일보 [오피니언] 아침논단 (2015. 02. 11.)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