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와 독립운동가 / 류시호 작가
서대문형무소와 독립운동가
류 시 호 시인 수필가
대학기숙사 선후배들과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서대문형무소로 역사탐방을 갔다. 그동안 동작동국립묘지와 4ㆍ19국립묘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는 가끔씩 가보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룬 독립 운동가들의 서대문형무소는 처음으로 방문을
했다. 이 형무소는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한국의 애국지사들을 투옥할 목적으로 1908년에 건물을 짓고 경성
감옥이라고 불렀다.
그 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투옥하면서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자,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짓고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개칭
하였다. ‘자유의 진공지대’ 또는 ‘자유를 박탈하는 곳’이라고 알려진 서대문형무소의 상징 붉은 벽돌담과 감시 망루는 지금도 남아
있다.
한편 이곳은 다른 지역의 감옥과 달리 18세 미만의 조선의 소녀수(少女囚)들을 수감했다. 그런 연유로 천안시 병천면의 아우내 장터
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도 이곳에 구금되어 악형(惡刑)을 받으며 시달린 끝에 순국하였다. 그 후 서울교도소로 개칭
되었다가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그 시기에 4ㆍ19혁명과 5ㆍ16 등이 일어났다. 제3공화국이 들어선 후 정치적 변동에 의해 수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김지하 시인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수감되어 ‘모화관 옛터’ 라는 시를 남겼던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대문형무소에는 적어도
하루에 백여 명이 갇히고 풀려나갔다. 지금 이곳에는 3ㆍ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등이 있으며 역사전시관으로 변경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별세한 분들에게는 열사나 의사라고 존칭을 쓴다. ‘열사’는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분들로 맨몸으로써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낸 사람이다. ‘의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친 의로운 분들로 무력(武力)
으로써 항거하여 의롭게 죽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국민의례 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을 위한 묵념이 있는데, ‘순국선열’은 일본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분으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애국지사’는 독립운동
을 하다가 광복을 맞아 그 이후에 돌아가셨거나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분들이다.
교사시절,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자주 갔고, 현충일에는 현충탑 행사에도 참석하고 글쓰기, 그리기, 연극공연 등 각종 행사를 통
하여 애국심을 가르쳤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독립운동이나 6.25전쟁 같은 현대사에 관심이 없어 아쉽다. 작년 8월, 서대문 독립
공원 독립관에서 광복기념 시낭송회를 할 때 필자는 민족시 낭송을 한 적이 있다.
애국심이란 인류애와 같이 대한민국이 고귀하다고 느껴야하며, 인간의 최고 도덕은 애국심이고 모국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의 기숙사 선후배들과 애절한 호국보훈의 달에 서대문형무소를 가보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에게 고마움을 다시 느꼈다.
우리 모두 항일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을 잊지 말고 살자.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6. 06. 09.) 발표
대구일보 [오피니언] 아침논단 (2016.06.14.)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