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정동진 부채길과 횡성호수(橫城湖水)/류시호 작가
정동진 부채길과 횡성호수(橫城湖水)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얼마 전,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친 마음을 달래려고 지인들과 가을을 보내며 정동진 부채길과 횡성호수길 문화여행을 갔다. 정동 심곡 바다부채길의 '정동'은 한양(서울)에서 정방향으로 동쪽에 있다는 뜻이다. 심곡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되었고, 정동진의 부채끝 지형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의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같다.
그래서 강릉출신 이순원 소설가가 제안하여 ‘정동 심곡 바다부채길’로 지명이 선정되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된 곳이며, 동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2천3백만 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이다. 걷기를 마친 후 묵호항 단골 회집에서 복어와 방어로 바다 향기를 느끼며 맛있게 먹고, 오랜만에 근처에 있는 모래시계 공원을 갔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이국적인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모래시계 공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도 구경할 수 있다. 매년 새해 첫날 일출과 함께 열리는 모래시계 회전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이어서 정동진 시간박물관에 들렸다. 정동진을 생각하면, ‘베이지색 등근모자/ 초록빛 바다에서/ 포크송을 즐겼던 우리들 / 기적(汽笛)을 헤치며 나타날 것 같아/ ------/ 세월이 만든 이마의 주름살/ 해송(海松)이 숲을 이룬 해안선/ 함께 걸었던 환상도 아니며/ 꿈을 만지던 바닷가의 담소/ 그때의 정동진행 야간열차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필자의 시 ‘정동진행 야간열차’가 생각나고, 대학 시절 동아리 친구들과 청량리역에서 모여 정동진행 야간열차를 타고 갔던 기억이 새롭다.
숙소인 원주시 문막읍 지인의 농장으로 갔다. 저녁은 바비큐로 맛있게 먹고, 농장에서 밤을 맞이하니 고향에서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횡성호수를 갔다. 이 호수는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에 있는 인공호수로 1990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1년 만에 완공된 호수이다. 10여 년 전 이곳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반가웠다.
한참 걷다 보면 소나무와 잣나무가 있는 산림욕장을 만난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깨끗함과 서정적인 풍경을 보며 행복함을 느꼈다. 길을 걷다 보면 수몰 지역의 남은 공간에 닿게 된다. 이어서 탁 트인 시야의 횡성호수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청량한 새소리, 낙엽 밟는 소리, 그리고 가을바람을 맞으며 걷는 횡성호수길 5구간은 행복한 미소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만추의 호수 길 다녀와서/ 홍시처럼 앓는 여인/ 가슬가슬한 이마 위에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단풍만 담으라 했는데 불을 안고 왔는지.’ 이 호수를 보니 가을 앓이 시가 생각난다. 그런데 서로 다른 꽃들이 모여 예쁜 화원을 이루는 것과 같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걷고 보니 가슴이 뜨겁다. 이렇게 풍경이 있는 호수 길을 지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아름다운 인생길이다.
햇빛 좋은 만추의 계절에 청명한 하늘과 푸른 바다의 동해안 부채길, 주말농장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그리고 횡성 호수길을 걷고 보니 가슴이 뻥 뚫리고 행복했다. 강원도의 햇빛은 질적으로 달랐다. 널리 퍼지는 햇살과 함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기억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코로나에 지친 우리 모두 전염병 조심하면서 즐겁게 살자.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20. 12. 18)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