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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멋지게 사는 분들과 일본인들--
경산2
2005. 7. 6. 18:26
장마 기간 이지만 비가 멈추니 날씨는 무척 덥군요. 그래도 농
사에는 도움이 될련지??? 초복이 다음 주인데 아직 한참은 더
워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날씨가 무덥고 불쾌지수가 높으면 음악을 듣고 보내면 좀 마음이
풀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예술인들은 스트레스도 받지만 생활이
자유분방하지요. 예술인들은 끼가 있다고 하지만 한곳에 정착을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조영남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에는 시인과 소설가가 기생들과 염문을 많이
뿌렸더군요. 1910년대 경성의 소문난 요릿집 명월관은 종로 거리
에서 이색 이벤트를 펼쳤는데 우산을 받쳐든 꽃 같은 기생들의
행렬을 등장시켜 광고를 했다는군요.
조선의 기생조합을 대신한 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은 요릿집에만
출입하지 않았고, 신문광고에 등장하는 제품광고 및 잡지표지,
행사 포스터 사진, 미술대학 모델 등에도 기생들이 많았다군요.
라디오 음악방송에 출연하고 레코드 음반을 취입해 인기가수가
되기도 했으며 ‘복덕방 목침’ 같았던 육단 최남선, 거액의
수표책을 들고 다니던 영국신사 장택상,
붓을 입에 물고 기생의 치마폭에 시를 쓰던 명필 송영기, 자신
의 시 ‘논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자상한 시인 수주 변영로
등이 장안의 요릿집 단골들이었다네요.
14살에 평양기생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장연홍(1914~?)은 요즘
인터넷에서 한창 뜨는 ‘얼짱’으로 손색 없을 정도의 미모로
찬사를 받았고, 취한 듯 쌍꺼풀 진 눈, 사람을 금방이라도 삼킬
듯한 미소는 ‘효리춤’ 이효리의 원조라군요.
‘봄봄’의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은 판소리 명창 박녹주
(1906~1979)를 짝사랑했으며 1928년 인사동 조선극장에서 8도
명창대회에 참가한 박녹주에게 김유정은 열렬한 연애편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끈질긴 구애를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
했답니다.
평양 기생 강명화(1900~1923)와 대구 부호의 아들 장병천과의
순애보는 불나비처럼 자신들의 몸을 등불에 던져버린 사랑이
야기로 강명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급기
야 23세의 나이로 목숨을 끊었으며, 장병천도 그 뒤를 따랐다
네요.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의 임종을 지
킨 것은 30여장의 음반을 내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왕수복(1917~2003)이라네요. 하긴 정주영 임종은 000 이라
고 하드니만????
동양 최고의 천문대 첨성대(瞻星臺)는 서기 647년 신라의 수도
경주에 세워졌으며 일본은 이를 본떠 28년 뒤인 675년 점성대
(占星臺)를 세웠답니다.
백제의 청동주조기술과 건축기술은 일본의 사원과 왕궁을 짓는
토대가 되었고, 신라의 의학은 일본 의학의 기초가 되었답니다.
금속활자, 도자기, 의복, 조선과 제철기술 등 한반도의 과학
기술은 일본의 문명을 이뤘고, 음식과 의복문화도 우리나라
에서 일본으로 많이 전해졌답니다.
일본의 ‘도부로쿠(濁酒)’의 뿌리는 한반도 남부에서 전래된
막걸리이며 일본에서 옛날 된장은 ‘고려장(高麗醬·고마비시
오)’이라 한답니다.
일본식 다도문화는 고려에서 융성한 다례(茶禮)가 들어간 것이
며 비단과 목면 등 직조기술도 한반도에서 전래됐고, 집과 집
짓기, 토기와 자기, 농사짓기와 술빚기, 약물과 의학, 인쇄기
술, 무기와 화약 등의 기술도 전수 해주었답니다.
요즘 임진왜란 연속극을 보며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를 다시 한
번 음미 한답니다.
날씨 더운데 님들 잠시 손을 놓고 시인과 소설가 유명인들의
이야기와 일본에 문화 및 기술 전수한 것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요.
저는 오늘 퇴근후 회사 근방 청주 인근 초정약수 싸우나에 가서
쿨하게 보낼려 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시길, 바 이.
사에는 도움이 될련지??? 초복이 다음 주인데 아직 한참은 더
워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날씨가 무덥고 불쾌지수가 높으면 음악을 듣고 보내면 좀 마음이
풀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예술인들은 스트레스도 받지만 생활이
자유분방하지요. 예술인들은 끼가 있다고 하지만 한곳에 정착을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조영남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에는 시인과 소설가가 기생들과 염문을 많이
뿌렸더군요. 1910년대 경성의 소문난 요릿집 명월관은 종로 거리
에서 이색 이벤트를 펼쳤는데 우산을 받쳐든 꽃 같은 기생들의
행렬을 등장시켜 광고를 했다는군요.
조선의 기생조합을 대신한 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은 요릿집에만
출입하지 않았고, 신문광고에 등장하는 제품광고 및 잡지표지,
행사 포스터 사진, 미술대학 모델 등에도 기생들이 많았다군요.
라디오 음악방송에 출연하고 레코드 음반을 취입해 인기가수가
되기도 했으며 ‘복덕방 목침’ 같았던 육단 최남선, 거액의
수표책을 들고 다니던 영국신사 장택상,
붓을 입에 물고 기생의 치마폭에 시를 쓰던 명필 송영기, 자신
의 시 ‘논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자상한 시인 수주 변영로
등이 장안의 요릿집 단골들이었다네요.
14살에 평양기생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장연홍(1914~?)은 요즘
인터넷에서 한창 뜨는 ‘얼짱’으로 손색 없을 정도의 미모로
찬사를 받았고, 취한 듯 쌍꺼풀 진 눈, 사람을 금방이라도 삼킬
듯한 미소는 ‘효리춤’ 이효리의 원조라군요.
‘봄봄’의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은 판소리 명창 박녹주
(1906~1979)를 짝사랑했으며 1928년 인사동 조선극장에서 8도
명창대회에 참가한 박녹주에게 김유정은 열렬한 연애편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끈질긴 구애를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
했답니다.
평양 기생 강명화(1900~1923)와 대구 부호의 아들 장병천과의
순애보는 불나비처럼 자신들의 몸을 등불에 던져버린 사랑이
야기로 강명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급기
야 23세의 나이로 목숨을 끊었으며, 장병천도 그 뒤를 따랐다
네요.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의 임종을 지
킨 것은 30여장의 음반을 내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왕수복(1917~2003)이라네요. 하긴 정주영 임종은 000 이라
고 하드니만????
동양 최고의 천문대 첨성대(瞻星臺)는 서기 647년 신라의 수도
경주에 세워졌으며 일본은 이를 본떠 28년 뒤인 675년 점성대
(占星臺)를 세웠답니다.
백제의 청동주조기술과 건축기술은 일본의 사원과 왕궁을 짓는
토대가 되었고, 신라의 의학은 일본 의학의 기초가 되었답니다.
금속활자, 도자기, 의복, 조선과 제철기술 등 한반도의 과학
기술은 일본의 문명을 이뤘고, 음식과 의복문화도 우리나라
에서 일본으로 많이 전해졌답니다.
일본의 ‘도부로쿠(濁酒)’의 뿌리는 한반도 남부에서 전래된
막걸리이며 일본에서 옛날 된장은 ‘고려장(高麗醬·고마비시
오)’이라 한답니다.
일본식 다도문화는 고려에서 융성한 다례(茶禮)가 들어간 것이
며 비단과 목면 등 직조기술도 한반도에서 전래됐고, 집과 집
짓기, 토기와 자기, 농사짓기와 술빚기, 약물과 의학, 인쇄기
술, 무기와 화약 등의 기술도 전수 해주었답니다.
요즘 임진왜란 연속극을 보며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를 다시 한
번 음미 한답니다.
날씨 더운데 님들 잠시 손을 놓고 시인과 소설가 유명인들의
이야기와 일본에 문화 및 기술 전수한 것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요.
저는 오늘 퇴근후 회사 근방 청주 인근 초정약수 싸우나에 가서
쿨하게 보낼려 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시길, 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