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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 한편의 글이 즐거움에 도움이 되길---

경산2 2005. 11. 12. 10:29
아침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지역이 많은 토요일입니다. 출근 길에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晩秋를 보내고 있구나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님들 내일은 휴일인데 산행을 안하시나요? 요즘 인기있는 칭기스
칸이나 신돈을 보면 우리 조상들 용맹하기도 했지만 우리 조상들
세대에 무(武)를 천시하고 문(文)을 숭상한 것 같지만 실제 전하는
것과는 다르게 월드컵 인기 못잖았네요. ㅎㅎㅎ

글 잘하는 아들은 마루에 앉히고, 무예를 익히는 아들은 마당에 앉혀
노예처럼 부렸다는 임진왜란 당시 어느 지방의 풍속화가 존재하지만
이처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천시했다
고 알고 있는데,

문이 무보다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문과 무를 함께
아는 것에 좀 더 높은 가치를 두지는 않았을까 합니다. 먼지 쌓인 고
서에 숨어서 활을 쏘고 검을 연마하는 조상들의 모습이 나오고, 오래
된 병풍에서도 나오는데,

고구려인들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뒤돌아 활을 쏘는 북방유목민의 재
주를 선보였으며, 고려의 무인들은 수박(手搏)으로 팔과 다리를 무쇠
처럼 단련하였으며

주먹으로 기둥을 치니 기둥이 흔들렸고(이의민), 벽을 치니 주먹이 벽
에 묻혔고(두경승), 원나라에서는 고려의 활을 두려워하여 “민간인들
이 활과 화살을 가지는 것을 금하라”고 공문을 내리기도 했다네요.
원은 몽골이 세운 나라 이름이지요.

유교의 나라, 조선에 들어와서도 무예는 늘 가까이에 있었는데 중종은
“문학과 무예는 아울러 권장해야 할 일”이라고 하고, 연산군은 “국
상 중이더라도 무예의 일을 폐지하지 않은 것이 우리의 전례”라고 큰
소리쳤다네요.

효종은 한가한 날이면 북원에 나가 말을 달리며 청룡도(靑龍刀) 휘두른
무인(武人)군주였으며 조선 통신사 일행은 말 위에서 갖은 재주를 부리
는 마상재(馬上才)로 왜인들의 기를 죽이곤 하였고,

한량들은 폭포에서 활을 쏘며 풍류를 즐겼고, 기생들은 쌍칼로 검무(劍舞)
를 추었으며 석전(石戰)은 죽고 상하는 자가 여럿 나올 정도로 격렬하였
지만 10대 소년부터 30대 장정까지 수백 명씩 편을 갈라 하루 종일 돌싸
움을 하였다는데,

관중이 수천 명에 달해 오늘날 월드컵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으며. 임
금이 친히 관람하기도 하였다고, 옛 그림과 문헌 여기저기에 나온다고 최
근 책을 낸 분이 있군요.

이 책에서는, 그동안 우리의 역사가 문에 치우치고 무에 인색했다는 비판
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민간인들 체육활동은 상세히 다루면서, 정작 사도
세자가 완성시킨 조선의 국기(國技)로 훈련도감이나

장용영에서 익히던 십팔기(十八技)에 대한 언급은 빠뜨리고 있고, 택견이
나 씨름 등 민속놀이를 맨손무예로 정의하는 것도 빠져있다는데 왕가에서
일은 알 수가 없다네요.

보통 문을 숭상하고 무를 얕보았다는 것은 아니것 같군요.그 시대 군주가
누군가 따라 조금 차이가 있을 것 같지요. 요즘은 관료와 직업 군인들 비
교보다 상경계와 이공계 비교가 더 훨씬 피부에 닿는 것 같네요.

이공계는 대개가 공장이나 일터에서 활동하고, 상경계는 사무실에서 펜을
굴리니 공대를 싫다고하지요.(물론 의약업은 별도 이지만) 그러나 요즘
같이 취업이 잘 안될때, 이공계 아니면 더 취직 하기가 힘들지요.

나두 공대를 나와서 지금도 일하고 있지만 우리가 수출하는 물품들 모두
기술자의 힘도 크지요. 우리의 선조들 빛나는 전통도 간직했었기에 아직도
우리나라 건재하지요. 모두들 함내고 주말 즐겁게 보내요,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