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직물이 좋은 이유?'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 하던 곳 --” 오래전 유행한 가요로 ‘하사와
병장’이라는 듀오의 노래 말이다. 목화 꽃은 꽃잎이 크고, 8,9월에 하얗게
피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릴 적 시골의 어머니는 목화를 재배했고, 그 속에서 솜이 나오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누님 시집 갈 때 사용한다며 남겨두었고, 우리에겐 오래된
솜으로 명절에 입는 한복 바지와 저고리에 넣어 주었으며, 이불에도 낡은 솜만
사용했었다.
그 후 나일론이라는 석유류에서 나온 화학 섬유가 옷도 만들고, ‘앙고라’라
는 이불도 만들어 시장에 나왔지만 촉감은 아무래도 면으로 된 옷감과 솜으로
된 이불을 따라 올 수가 없었다.
목화의 생산은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4개국이 전체 생산량의 70% 를
차지하고, 미국은 전 세계 목화 수출액의 40%를 차지하는 목화 강대국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인 미국의 남부지방은 아프리카 흑인 노
예들을 활용해서 엄청난 목화재배를 했고, 그래서 흑인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
도 일어났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몸에 걸친 면직물의 고향은 인도이며 고대 인도인들은 인더
스 강변에 자라는 야생 목화를 따서 실을 뽑아 천을 짰다. 인더스 강을 건넌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사람들이 입은 희고 가벼운 천을 보고 놀랐다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아랍인들은 인도 사람들이 만든 천을 수입했고, 중국도
인도에서 수입을 하다가 14세기 들어서야 면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목화씨는 그 뒤 고려의 문익점이 붓통에 담아서 원나라에서 몰래 가져왔고,
16세기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면을 전했다한다.
인도인들은 18세기까지 직조술과 염색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인도 무갈 제국의 면직물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다투었지만, 최종 승리자는 영국이었다.
영국 기업가들은 19세기 중반 인도에 최초의 면방직 공장을 세우고, 이곳
에서 뽑은 면사를 본국의 맨체스터 공장에 수출했으며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벌어져 미국 남부의 목화 생산이 중단됐을 때도 유럽 소비자들은 인도산 목
화로 빈자리를 채웠다한다.
영국은 직물공장 덕분에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기술로 인하여 지
금도 영국제 신사복 옷감을 최고로 알아준다.
우리가 나일론, 모직, 밍크, 무스탕, 가죽제품 등을 많이 사용하지만 환
경 단체의 반대 운동도 있으니 자연에서 바로 채취한 무공해 친환경 제품인
안동 삼베, 한산 모시, 명주, 그리고 목화제품을 천연 염색을 하여 바꾸어
보면 어떨지.
또한 우리의 면직물로 한복을 만들어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한복의 선과 색으로 몇 년 전 부산에서 개최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
력체)정상들 회의 때 보여준 한복의 멋을 세계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얼마 전에는 큰 아들 결혼 준비를 하며 집 사람이 오랜만에 침대 이불을
바꾸고, 이불 속 솜도 같이 바꾸었는데 새로 구입한 목화솜이 아주 부드럽
고 폭신폭신해서 잠도 잘 오고 너무 포근했다.
요즘도 우리가 제일 선호하며 즐겨 입는 옷감은 면직물이며 지폐, 의료용
솜, 양초의 심지, 화장품, 치약과 아이스크림 등의 원료로 목화가 사용된다.
면은 인류 문화 발전에 비단이나 양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뜻밖의 사물을 통해 세계사를 되짚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동양일보 [프리즘] (2008. 08. 00.)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