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날 소묘(素描)
경산 류 시 호 시인 ․ 수필가
높고 푸른 하늘의 연속인 지난 9월 중순 휴일, 동창들 만나려고 잠을 설치고 일어났다.
부지런히 배낭을 챙겨서 아내와 약속장소로 갔다. 회장과 등산대장도 산행 날만 되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준비해서 나온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전국에 흩어져 사는 고교 동
기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모두들 잠을 설치나 보다.
목적지인 문경새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고향에서 올라오신 70중반의 은사 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포옹을 하며, 서로 소식 전하고 듣기에 바빴다. 그런데
은사님께서 등산복에 모자를 눌러 썬 후 처음 나타난 동창에게 “자네 그동안 잘 지냈는
가.”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K가 “야! 너 누구냐 반갑다.” 하고 응수를 해서 동창 모
두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K는 오랫만에 참석했고, 동창들 얼굴도 많이 변해서 은사님과
구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 산마다 붉은 옷을 입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나이 들어
가는 친구들이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마음껏 웃고 즐겁게 보낸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 박
사, 사장, 교장 등 사회적인 직급이나, 직위 없이 너, 나, 야! 임마, 이름과 별명 부르며 학창
시절로 돌아가 즐겁게 보낸 하루였기에 그냥 머무르고 싶었던 날이었다.
이제는 현직에 있는 친구들이 적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나기도 어렵다. 서울
에서 함께 간 친구는 몸이 불편하여 중간에 하산을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참석해
고맙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잇는 끈이 있는 것 같다. 등산이나 모임에 안가면, 친구를 못 만나
듯이 나이 들면서 이어진 마음의 끈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걸 느낀다. 우리는 누구나
직장, 동창, 사회에서 이어지는 끈이 있다. 그 끈을 잘 간수하고 유지하며 살도록 노력
해야겠다.
이번 산행에서 무거운 단체 음식물을 들고 가는 친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내색을 안
하며 협조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더욱 빛나는 하루였다. 이번 모임의 백미는 친지가 준
귀한 송이버섯을 동창들 모두가 먹도록 배려한 총무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작은 것이
지만 서로 소통하는 법을 보았다. 소통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막힌 것을 뚫어주는 힘
이 있다.
인생은 쉼 없이 지나가는 과정이며, 비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바람 부는 날 등 세파에 시
달리며 성숙해지는 것 같다. 삶이 얼마나 짧은지 모르고 경쟁과 질시에 사로잡혀 살았다면,
이제 그만 가을 낙엽처럼 떨어뜨리고 가야겠다.
결실의 계절이다. 살다가 길이 보이지 않으면 주저앉지 말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이 가을 동창들을 만나 즐거웠던 것을 생각하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다.
누군가에게 배려하고 아름다움을 준다는 것은 큰 감동이며, 큰 행복이다. 낙엽의 계절, 우리
모두 주변사람이 아름답고 행복해지도록 함께 노력해보자.
월간 '과천사랑 ' 오피니언 독자투고 과천시청 (2011. 09. 27.)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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