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휴암(休休庵)과 동해바다
경산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지난 11월 하순, 오랜만에 동해안으로 대학 입학동기들과 여행을 떠났다. 늦가을의
쓸쓸함도 달래고 한해를 정리하며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오래 묵은 친구들과 대화는
즐겁고 재미가 쏠쏠했다.
친구들이 각자 준비한 간식은 절편, 김밥, 과일, 오징어무침, 족발 등 다양했고, 특히
막걸리와 한잔을 하니 지난 간 시절이 그리웠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동기들 4명
이 서울을 출발하여 설악산과 강릉을 거쳐 영주 부석사까지 무전여행을 한 적이 있다.
지금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때는 가능한 일이었다. 버스가 동해를 달리니 필자의 시
(詩) ‘베이지색 등근모자/ 초록빛 바다에서/ 포크송을 즐겼던 우리들/ 기적(汽笛)을
헤치며 나타날 것 같아---’ ‘정동진행 야간열차’가 생각났다.
군복무 시절에는 안동시 사령부에서 울진군 연대까지 매주업무 차 다니며 동해바다
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었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고 푸른 바다와 파도, 해송(海
松)을 보면 더욱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점심을 먹기 전 양양 휴휴암(休休庵)에 갔다. 휴휴암은 국내의 대표적인 관음기도
도량 중 한 곳으로, 쉬고 또 쉬어가는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강릉에서 속초 방
향으로 7번 국도를 따라 약 40여분 달리다 소돌항을 지나면 바닷가에 자리한 작은
암자가 휴휴암이다.
작은 절과 이어진 바닷가 너럭바위에 서니, 그대로 바다 위에 떠있는 느낌이며 바다
물위 평상(平床)처럼 펼쳐져 있다. 우리 일행은 동해의 푸른 바다가 잘 보이는 그곳
에서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었다.
이곳은 낙산사, 죽도암과 더불어 해돋이, 해맞이 사찰로도 유명하다. 바닷가의 아름다
운 사찰 휴휴암은 오래 전 다녀온 부산 기장읍 해동용궁사보다 느낌이 좋았다. 휴휴암
을 떠나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하여 주문진으로 갔다.
동해안에서 가장 큰 어항인 이곳은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맛있는 회와 소주
로 반주를 하니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그 시절은 모두들 경제적으로 어려워 짬뽕 국물
에 막걸리로 단합대회를 했으며 어쩌다 향토장학금이 오는 날이면 생맥주와 마카로니,
맥시칸 샐러드가 최고였다.
겨울이 가까워 오며 주문진항에는 도루묵과 홍게가 제철이라 시장에서 도루묵 구이에
소주를 한잔하고 관광버스에 올랐다. 여행하기 좋은 늦가을, 바닷가 해안 길을 달리다
모래사장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니 중년의 삶이 너무 아름답다.
석양을 바라보며 숙연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 모두의 보편적인 감성일 것이다. 동해안
해안도로는 쪽빛바다, 하얀 물거품이 일렁이는 파도, 소나무 숲이 있는 모래밭 등이
환상적이다.
우리 동창들은 그동안 산업의 일꾼으로 해외와 국내 현장에서 열심히 살았고, 현직에
서 물러나는 세대로 지난 일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현재대로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휴휴암과 동해를 여행했다.
이제는 마음속으로 그리는 미래의 삶보다 현재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유익하게 보내
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현재의 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고 하는데, 귀가길 차창을 바라보며 작은 것에 만
족해하면서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속 다짐도 해보았다.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5. 01. 05.)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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