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오늘 아침 운동은 자전거를 타고 10여키로를 달리며 냇가 체육공원에
갔는데 늦게 가서인지 물고기들이 아침 달라고 뛰놀지를 않고 그 대신에 두루미
들만 물속에서 아침 밥을 찾고 있더군요. ㅎㅎㅎ
이렇게 냇가의 물새도 먹고 사는게 중요한데 요즘 우리나라 경기가 말이 아니고
정말 정신 없이 가고 있지요. 그러나 얼마전 TV에서 세종과 태종에 대한 역사물
방영을 보면 무엇인가 다르군요.
그래서 요즘 날씨는 덥지만 아직은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서 세종과 태종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 보았는데 좋은 내용이 많더군요. 님들도 시간이 나면 읽어
보세요.
우리가 세종대왕을‘한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이라지만 조선 세종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데 세종의 생애가 태종이나 연산군 등과 비교할 때
단조롭고 평탄해 보이지만,
그러나 세종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지며 세종은 즉위 초기 처가(妻家)
일족이 몰락하는 비극을 겪었고, 재위기간 내내 큰 형님 양녕대군, 불교 문제 등
에서 신하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요.
지금과 같은 한반도 모양의 강토(疆土)를 확정한 이도 세종이며 국내외적으로 세
종시대는 매우 역동적이고 극적인 시대였으며 세종은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반
대세력까지 끌어안는 포용의 리더십과 실용의 인재관을 통해
‘사대부 중에 형벌로 죽은 이가 없는 시대’를 만들어냈고 세종의 지난한 분투의
과정을 읽노라면 태평성대(太平聖代)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답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형님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해서 오랜기간 군주 연습을
시켰었지만 다시 태종이 세자를 세종으로 바꾸었답니다. 태종은 심사숙고 끝에 세
자를 바꾸었지요. 또한 조선 초기 태종이 아니면 어수선한 정치 불안정을 정착 못
시킬 뻔했지요.
태종(이방원)이라면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무참히 죽인 잔혹한 인간을 떠올리며
그러나 태종은 ‘냉혹’했는지 모르지만 ‘잔혹’한 군주는 아니었으며 그는 무
조건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요.
왕자의 난에서 이복동생을 죽인 건 그가 아니었고, 권력을 다퉜던 형 방간도 끝
까지 살려 두었으며 처남 형제를 제거한 까닭은 권력욕이기보다는 강력한 국가건
설이라는 목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목숨을 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결단과 추진력,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비전을
가진 군주로서 태종을 높이 평가하더군요. 요즘처럼 책임 있는 자리에 계시는 분도
이 책좀 보고 반성하고,
현충일 저녁 군주는 무엇을 해야 하며 신하나 관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를 위한
바른 길인지 관심도 가져보면 좋으련만, 어수선하고 경제가 말이 아니지만 그러나
님들 힘내시고 즐겁게 건강한 밤 되세요, 바 이.
갔는데 늦게 가서인지 물고기들이 아침 달라고 뛰놀지를 않고 그 대신에 두루미
들만 물속에서 아침 밥을 찾고 있더군요. ㅎㅎㅎ
이렇게 냇가의 물새도 먹고 사는게 중요한데 요즘 우리나라 경기가 말이 아니고
정말 정신 없이 가고 있지요. 그러나 얼마전 TV에서 세종과 태종에 대한 역사물
방영을 보면 무엇인가 다르군요.
그래서 요즘 날씨는 덥지만 아직은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서 세종과 태종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 보았는데 좋은 내용이 많더군요. 님들도 시간이 나면 읽어
보세요.
우리가 세종대왕을‘한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이라지만 조선 세종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데 세종의 생애가 태종이나 연산군 등과 비교할 때
단조롭고 평탄해 보이지만,
그러나 세종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지며 세종은 즉위 초기 처가(妻家)
일족이 몰락하는 비극을 겪었고, 재위기간 내내 큰 형님 양녕대군, 불교 문제 등
에서 신하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요.
지금과 같은 한반도 모양의 강토(疆土)를 확정한 이도 세종이며 국내외적으로 세
종시대는 매우 역동적이고 극적인 시대였으며 세종은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반
대세력까지 끌어안는 포용의 리더십과 실용의 인재관을 통해
‘사대부 중에 형벌로 죽은 이가 없는 시대’를 만들어냈고 세종의 지난한 분투의
과정을 읽노라면 태평성대(太平聖代)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답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형님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해서 오랜기간 군주 연습을
시켰었지만 다시 태종이 세자를 세종으로 바꾸었답니다. 태종은 심사숙고 끝에 세
자를 바꾸었지요. 또한 조선 초기 태종이 아니면 어수선한 정치 불안정을 정착 못
시킬 뻔했지요.
태종(이방원)이라면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무참히 죽인 잔혹한 인간을 떠올리며
그러나 태종은 ‘냉혹’했는지 모르지만 ‘잔혹’한 군주는 아니었으며 그는 무
조건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요.
왕자의 난에서 이복동생을 죽인 건 그가 아니었고, 권력을 다퉜던 형 방간도 끝
까지 살려 두었으며 처남 형제를 제거한 까닭은 권력욕이기보다는 강력한 국가건
설이라는 목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목숨을 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결단과 추진력,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비전을
가진 군주로서 태종을 높이 평가하더군요. 요즘처럼 책임 있는 자리에 계시는 분도
이 책좀 보고 반성하고,
현충일 저녁 군주는 무엇을 해야 하며 신하나 관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를 위한
바른 길인지 관심도 가져보면 좋으련만, 어수선하고 경제가 말이 아니지만 그러나
님들 힘내시고 즐겁게 건강한 밤 되세요, 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