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산방과 운보의 집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20여 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보려고 친구와 진
도를 간적이 있다. 그곳에 가보니 약 2.8키로의 바다가 40여 미터의 폭으로 물
위로 드러나는 신비로움은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진도는 바다가 갈라지는 것 외에도 ‘강강술래’와 ‘진도아리랑’이 있다.
또한 한양에서 귀양 온 선비가 많아서 곳곳에 선비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때 친구와 ‘운림산방’을 갔었지만, 시간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여 세심히
보고 싶어서 최근에 다시 갔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허유가 말
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소치 허유는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에게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아
남종화의 대가가 되었다. 인사동에서 허씨 3대의 그림을 가끔씩 보았는데, 이번
여행을 하며 운림산방에서 작품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충북 청원군에 있는 ‘운보의 집’이 생각난다. 증평읍에 살
면서 가끔씩 청각장애인 운보 김기창 대화가의 집에 가서 그림을 감상했다.
운보는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말년에 어머니 고향인 청원군에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예수의 일생을 한국인의 모습으로 담은 성화, 청록 및 바
보산수화 등 그림을 보노라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한다. 그는 예술은 완성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창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향 박래현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여 아내로서, 친구로서, 비서로서,
교사로서 예술의 반려로서 말을 못하던 그에게 말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존
재가 아닐까 한다. 운보와 동거 동락해 온 우향의 헌신적인 삶은 멋진 순애보
가 아닐까 한다.
진도에 가면 서화가무를 자랑 말라고 할 정도로 섬사람 모두가 화가이며 명
창이었다. 20여 년 전 방문하여 구입한 남종화 제자의 수묵화 그림은 지금도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연수를 통하여 동서양 미술사를 배
우고, 인사동 갤러리를 가끔씩 방문하여 예술 세계를 접하다보니 안목이 조금
씩 늘기에 더욱 그림을 가까이 하고 싶다.
예술이란 각기 다른 하나가 모여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아름다운 관계를
넓은 도화지 위에 사람이 사는 것을 표현 한 것 아닐까 한다. 예술가가 아니
라도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느낄 때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살다 보면 꽃도 비에 젖고 흔들리면서 피고, 인생도 비에 젖고 흔들리면서
살아간다. 짙은 녹음의 계절, 흙내가 물씬 풍기는 운림산방이나 운보의 집에
가서 그림도 감상하고 예술가의 삶을 느끼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밤새 비 내려 계곡물 넘치는 때, 비 맞은 초록의 풀들이 내뿜는 향기에 취해서
세상살이에 지친 아픈 상처의 흔적도 사라질 것 같다. 예술과 미술은 저토록
아름다운 것인데, 우리 모두가슴을 헤집고 달려오는 바람을 함께 맞이하며
웃으며 살자.
중부매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1. 08. 16.)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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