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작가)백제문학 2016년 봄호
신간 동문서적(중앙대학교동창회보)2016년 5월호
중앙대학교 출신 등단 문인들은 1,500여 명으로 국내 최고로 많이 배출함.
웅진시대의 백제문화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공무원문학협회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학 기행에 참여하려고 대전역으로 갔다. 카페나 카톡, 밴드로 이야기 나누던 문인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그동안 부소산성과 백제의 별궁 연못 궁남지가 있는 부여는 여러 번 다녀왔고, 작년 공무원문학회 세미나 때 서산시 가야산 절벽에 위치한 백제시절의 마애삼존불상(三尊佛像 국보 제84호)을 자세히 본적이 있다. 그리고 대학동창들과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한 김제시 금산사와 의자왕(660년) 시절에 건축한 내장사를 여행한 적도 있다.
이번 문학탐방은 백제가 한성시대 이후 사비성(부여)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5대 64년간 웅진(공주)을 도읍지로 한 공산성(公山城)방문이다. 공산성은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으로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성 안에는 웅진 시대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연못 2개소, 고려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 있다.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단결 같은 금강이 발아래에서 찰랑거리는 공산성은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 복원한 동문과 서문이 깔끔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는데 역사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더욱 가치가 있어 보인다. 가족과 부부, 연인들이 봄을 맞이하여 여유롭게 성벽 길을 산책하는 것을 보니 옛날 화려한 백제시절이 생각난다.
무령왕릉은 송산리 제6호 벽돌무덤 북쪽의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송산리고분군 조사 때에는 왕릉으로 주목되지 않았다. 왕릉으로 발견된 것도 매우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는데, 40여 년 전 제6호 벽돌무덤 내부에 스며드는 유입수를 막기 위하여 배수를 위한 굴을 파면서 왕릉의 입구가 드러났다. 무령왕릉은 도굴과 붕괴 등의 피해가 없이 완전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굴되어 고대사 연구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출토유물은 4,600여 점으로 중요 장신구로는 왕이 소지한 것으로 보이는 금제관식(金製冠飾) 1쌍(국보 154호), 금귀걸이 1쌍(국보 156호), 금제 뒤꽂이 1점(국보 159호)등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목 17건이다. 무령왕릉은 무덤의 지석(誌石)을 통하여 주인공이 정확하게 밝혀진 고대의 무덤으로 백제역사의 중요하고 훌륭한 군주였다. 발굴된 유물 중에 금으로 만든 관장식, 용과 봉황이 장식된 큰 칼, 글씨가 새겨진 팔찌 등은 연대가 확인된 유물로 백제사는 물론 한국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무령왕의 벽돌무덤에는 중국 남조계통의 무덤 형식에 중국제 도자기 등이 있었고, 일본산 금송(金松)을 사용한 관재(棺材)등은 백제가 당시 중국·일본과 교류를 전개했다는 흔적들이다. 이와 같이 왕릉과 출토유물을 통하여 웅진시대 백제는 중국 남조문화와 직접적 영향을 받았으며, 일본에서 금송 등을 수입한 것을 보면 백제가 주변 국가들과 무역 및 문화교류 등이 많았음을 엿볼 수 있다.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20정상회의가 있었는데 20여 개국 외국 정상들이 우리문화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기원전 5000년경의 빗살무늬토기와 기원전 6-5세기의 돌칼, 6-7세기의 백제금동대항로(국보 287호)등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천한 한국의 명품 20선에 세계 정상들이 감탄을 했다. 5천년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은 소박함과 다양함, 질박, 검소함인데, 백제금동대항로와 고려청자, 그리고 고려불화는 정말 섬세하고 화려하다.
여러해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수를 받을 때에‘대전대학 이한상 교수는 삼국시대의 장신구 문화’강의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중 왕릉이라고 표기를 한 곳은 백제의 무령왕 한 곳 뿐이라고 했다. 이번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왕릉이라는 지석을 확인하니 기분이 좋았다. 1971년 이곳의 왕릉을 발굴하였을 때 무덤에서 왕과 왕비의 금 휘장 2개가 나왔고, 왕의 목걸이가 세련되게 만들어졌으며, 왕의 귀걸이는 무겁고 귀품이 있었다. 왕비의 귀걸이에는 유리구슬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서양의 유리 공예기술이 일찍이 백제에 유입된 것 같다. 그리고 팔찌에는 경자년, 장인이름이 기록되어 제작 년대도 알 수 있었다. 유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단과 도자기, 종이, 인쇄술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문화이동을 하였다는데 이 시절 페르시아와 로마 등이 중국과 백제, 고구려, 신라와 교역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왕은 금관을 안 쓰고 머리에 금 휘장을 사용했으며, 귀걸이는 고리가 굵고, 목걸이는 금으로 만들었다. 귀족들의 관모 중 용무늬는 고관들이, 풀 무늬는 좀 낮은 계급들이 사용했다는데 익산의 미륵사지에서 출토한 좌평(총리)과 나솔(6품)에도 관모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허리띠에는 귀신 얼굴이 들어가 있었는데 5세기 이후 고구려의 유물에도 비슷하게 나온다고 하니 그 시절 귀족들 의복에 유행을 한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무령왕릉에서 금동신발 2켤레를 보았는데 신발에 스파이크 있으면 백제, 없으면 신라 것으로, 백제와 신라 왕족, 귀족들 간에 자존심 경쟁을 느끼게 한다.
무령왕릉 잔디광장에서 시민, 기관·단체, 학생 등 1000여 명이 참가하는 공주시민 걷기대회 행사를 보았고, 공산성에서는 백제의 숨결과 어우러진 각종행사를 보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는 그 안에 엄청난 보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은 공주의 무령왕 무덤에서 귀중한 유물들이 발견된 것은 백제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작년에는, 공산성과 무령왕릉 등 백제문화재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국가적으로 경사로운 일이고, 공주와 부여, 익산지방은 축제분위기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합쳐 12건으로 늘었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 공주를 여행하며 백제문화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식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겨우내 식물들은 봄이 오면 꽃을 피우려 추위와 거친 바람을 이겨 낸다. 탈무드에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에 자기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식물들이 추위를 이겨내듯 좋은 인연과 우정을 잘 키우며 살아야 희망과 행복도 유지된다. 여행 중 만난 문인들과 문학을 이야기하니 즐겁다. 자신이 쓴 시집이나 수필집을 나누고 가져온 간식을 나누어 먹다 보니 따뜻한 정과 행복함을 느낀다.
무령왕릉과 공주박물관은 백제문화의 보고(寶庫)로 기억되고 공산성 정자에 앉아서 아름답게 구름이 퍼져 가는 것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도 느꼈다. 이번 여행에서 문인들과 대화와 토론으로 문학지식도 쌓고 새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록빛 봄날에 문학이라는 인연을 통해 내적으로 성장하고,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만남은 매우 귀하고 소중했다. 문인들과 함께한 즐거움은 오래 갈 것이며 다음 문화탐방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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