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과 자야 그리고 길상사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얼마 전, 대학 기숙사 선후배들과 문학탐방을 위해 성북동의 사찰 길상사를 방문했다. 이곳은 원래 청운각, 삼청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불린 고급 요릿집 대원각으로, 이 요정을 운영하던 김영한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감화돼 1천억이 넘는 건물과 땅을 시주하면서 사찰로 태어났다.
자야(子夜) 김영한의 연인 백석(白石) 백기행 시인은 평안북도 정주출생으로 조선일보와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근무했다. 자야는 백석이 ‘당시(唐詩) 선집’을 읽고 지어준 호이다. 백기행은 방언을 즐겨 사용하면서 향토적인
서정의 시들을 발표했는데, 백석의 나이 26살, 자야의 나이 22살 함흥에서 만나 뜨거운 사랑을 했다.
그러나 백기행이 부모님 지시로 선을 보고 결혼을 한 것을 알고, 김영한은 서울로 이사를 했고 백석도 서울로 직장을
옮겨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부모님의 성화에 또 다시 결혼을 하고 자야를 찾아왔으며, 백석이 만주로 가
자고 했지만 그녀는 가지 않았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탸사가 아니 올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이 시는 백
기행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자야는 사랑하는 백석을 평생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았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길상사내 길상화(법명) 김영한의 공덕비와 함께 이 시의 시비(詩碑)를 함께 세웠다. 우리 일행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교장으로 퇴임한 G시인의 해설에 역사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퇴임한 K의 보충설명, 중앙일간지 문
화부장을 명퇴 후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와, 대학에서 와인학을 가르치는 K교수의 질의 등 백석과 자야의 사랑에 대하
여 열띤 토론을 펼쳤다.
필자와 다른 기숙사 동문들은 그들의 가슴 아픈 사랑에 공감하며 모두들 잠시 시인이 되어 보았다. 이어서 만해(萬海)
한용운의 고택 심우장(尋牛莊)으로 이동했다. 독립운동가였던 만해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는 문학기행을 마치고 성북동의 유명한 쌍다리 식당에서 돼지 불고기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된장찌개로 밥을
먹었다.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자주 먹었던 된장찌개였지만, 다른 음식과 섞어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는 단심(丹心)을
생각하고,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다는 항심(恒心)의 된장 맛을 느꼈다.
된장도 사람들처럼 변치 않는다니 기숙사 선후배들 간에 우정을 잘 유지 하자고 마음을 다졌다. 80평생 한 남자를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은 멋진 순애보이다. 특히 중앙대학 문학평론가 백철 교수는 신문 칼럼에서 ‘한국 시사(詩史)
에서 시인 백석을 소월 다음 가는 귀재(鬼才)’ 라고 평했다.
김영한은 백기행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 동안 일체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자야의 고결한 마음은 많은 독
자에게 사랑의 숨결이 되어 가슴을 적셔준다. 한편 헤어지면서 다음 모임은 이북 5도청의 명예군수를 맡고 있는 K가
속초로 가자고 제안했는데, 속초행 버스를 탈 생각을 하면 삶의 활력소가 생긴다.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7. 04. 13.) 발표
국내 최고 '조선왕조실록'의 권위자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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