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축제와 벽골제 그리고 아리랑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오래 전 회사를 다닐 때 같은 부서에 근무한 후배 K가 자기 고향인 전북 김제로 초대를 해서 간적이 있다.
K가 안내한 김제평야(金堤平野)는 동진강과 만경강유역에 발달된 곳으로 ‘김제만경평야’로 불리며, 한
국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때 변산반도와 내소사를 둘러보며 끝없는 들판의 지평선을 직접 체험해보았다. 그리고 K가 조정래 작가
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지역이라고 했다. 최근에 익산시에서 사업을 하는 J의 초대로 대학졸업 동기
들이 가을을 보내며 김제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일행이 현지에 도착하니 ‘김제 지평선축제’ 기간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광활한 평야와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을 배경으로 축제의 주 무대인 벽골제(碧骨堤)가 수리시설임에 착안하여, 수상 마당 프로그
램도 있고 저수지를 돋보이게 야간 조명을 멋지게 설치했다.
축제가 열리는 벽골제를 향하는 도로에는 코스모스들이 가을의 전령사가 되어 인사를 건넸다. 이곳 축제
에서 벽골제 전설 ‘쌍룡놀이’와 풍년기원 ‘입석줄다리기’가 있는데 벽골제 저수지가 주인공이다. 벽골이란
김제의 백제 때 지명인 볏골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으로 제방입구에 쌍룡을 형상화한 큰 작품이 눈에 들
어온다.
쌍룡놀이는 벽골제에 전승되는 ‘단야낭자’의 설화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 저수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1천 7백 년 전 백제 비류왕 시절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큰
평야에 스토리가 있었기에 조정래 작가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을 쓴 것 같다.
소설의 배경으로 김제만경평야가 선택된 이유는 일본에게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의 수난과 투쟁
을 대변하는 중심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리랑’이 노동요에 망향가, 투쟁가로 민족의 노래가 되었고,
조선의 얼과 민족의 이름으로 독립을 위해 싸워나갔던 무수한 민초들의 삶을 배태(胚胎)한 배경지역으로 설
정되었다.
대하소설 아리랑은 1990년 12월부터 한국일보에 연재소설로 발표되었고 해방50주년을 맞이하며 12권을 전
집으로 출간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아르마따출판사와 전집 12권의 출판계약이 체결되어 최초로 프랑스어로
완역출간이 이루어진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누적판매부수 330만부를 기록하였다.
모두가 분주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끔씩 들판에 나가보자. 내 논밭이 아니어도 가을
들판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김제 평야가 아니라도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지럽다 해도 가을들판을 생각하면 고향이 그리워지고 조금씩 여유롭고 마음도 너그러워
질 것이다. 졸업동기들과 김제시 원평면의 유명한 한우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김제평야를 소재로 대화를 나누
었다. 이번 여행에서 김제평야의 지평선, 벽골제의 역사도 알게 되었고,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도 다시 기억하
게 되었다.
김제시 일대를 안내한 J에게 감사하게 생각했고, 코스모스 길과 풀벌레 소리들을 듣고 보니 지난 세월에 대한 향
수에 잠겨 마음이 차분해졌다. 필자는 고속도로 차창 밖으로 가을밤 둥근 달을 쳐다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
생 잊지 못할 추억을 쌓고 싶을 때 김제지평선을 달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7. 11. 14)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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