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지는 가을 서오릉에서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오래전 대학을 입학한 후 서오릉에서 신입생환영회가 있어 처음으로 조선 왕릉을 가보았다. 얼마 전,
대학시절 기숙사 선후배들과 하얀 뭉게구름 핀 파란 가을하늘 아래 서오릉으로 문화탐방을 가며 대
학 신입생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서오릉에는 5기의 왕릉과 2기의 원, 1기의 묘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
가 묻힌 명릉과 장희빈을 모신 대빈 묘가 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세 명의 정궁과 여섯 명의 후궁을
두었는데, 숙종은 왕후와 후궁을 정치적인 이유로 폐하고 복귀시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숙종을 영국의 헨리 8세와 비교하는데, 숙종은 9명의 부인이 있었고 헨리 8세는 여섯
명의 여인이 있었다. 헨리 8세 경우 첫 번째 왕비와는 이혼했고,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은 왕자를 낳지
못하자 간통의 오명을 씌워 처형시켰다.
그리고 여섯 번째 왕비는 두 번 결혼한 과부를 맞이했다. 숙종과 헨리 8세가 사랑한 여인 중 희빈은
사약을 받아 죽고, 천일의 앤이라는 유명한 소설의 주인공이 된 앤 불린은 단두대에서 죽임을 당했다.
헨리 8세는 첫 번째 왕비 캐서린과 결혼무효를 교황이 인정하지 않아 두 번째 왕비 앤 불린과 결혼하
기 위하여 영국의 종교개혁을 하였다. 왕의 뜨거운 사랑을 받던 장희빈과 앤 불린은 둘 다 왕비를 쫓
아내고, 희빈은 권력을 얻어냈고
영국은 앤 불린 때문 가톨릭에서 영국 국교회(성공회)로 종교를 바꾸었다. 군주나 왕비, 평범한 사람
도 권력과 출세, 돈, 연인에 대한 욕심이 과하면 인간의 명예와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무고하고 저주한 죄로 죽임을 당해 경기도 광주에 모셨는데, 그녀의 아들 경종
이 즉위하면서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하였다. 그런데 희빈은 사망 후 3백년이 지난 1969년
서오릉 경내로 이장해 올 때
왕비들과의 나쁜 감정을 고려하여 명릉과 멀리 묘를 만들고 대빈 묘라는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최숙
빈은 죽고 난 후 파주시 광탄면 소령원(昭寧園)에 모셨다. 영조는 어머니 무덤 소령묘를 소령원으로
승격시키고 왕릉처럼 정자각, 비각을 만들었다.
여인들의 암투 속에서도 희빈과 숙빈의 아들들은 왕으로 등극했고, 앤 불린은 간통이라는 오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지만, 그녀의 딸 엘리자베스 1세는 여왕이 되었다. 숙종이 사랑한 여인 인현왕후, 장희빈,
최숙빈과 헨리 8세가 사랑한 앤 불린은 역사소설과 드라마, 영화의 단골주제가 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스무 살 때는 연인에, 서른 살 때는 쾌락에, 마흔 살 때는 야심에, 쉰 살 때는
탐욕에 움직인다.’고 했다. 조선의 숙종이나 영국의 헨리 8세, 짧은 순간의 쾌락과 탐욕 때문에 군주로
서 명예를 잃었다.
조선의 왕이나 영국의 왕, 왕세자 시절 제왕학(帝王學)을 공부하고 왕이 되었겠지만 군주는 간신배나
여인들 관리를 잘 해야 한다. 가을의 전령사라는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고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숲
사이로 노을이 지는 서오릉을 바라보니,
왕조시대나 지금이나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주변사람을 잘 다스리고 백성들이 잘 따르도록 지도력과
통솔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5. 10. 21.) 발표
뉴스시선집중 (2019. 10. 15) 발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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