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국내 해외여행 및 산행 후기

(에세이) 봄 내음 번지는 덕유산 / 류시호 작가

경산2 2020. 3. 12. 16:44

          봄 내음 번지는 덕유산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지난 겨울방학 때, 동료 교사들과 덕유산 눈꽃을 보려고 관광버스를 탔다. 덕유산 향적봉 눈꽃은 오래 전에 다녀왔지만, 다시 갈 기회가 생겨서 좋은 여행이었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으로 오르는 사이 순백의 눈꽃이 고목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고 환상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쌓인 아름다운 산과 능선을 보려고 전국에서 오는 것 같다.

 

덕유산을 생각하면 20대 초반 군복무 시절의 늦은 봄이 생각난다. 휴가 중에 여동생과 고향 친구들을 데리고 무주구천동 개울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다음날 백련사에서 약수를 마신 후 산 정상에 서니 능선의 주목들과 철쭉 군락에 핀 꽃들이 아름다워 힘겹게 등산한 피로가 말끔히 가신 적이 있다.

 

그때의 아름다웠던 덕유산 등산의 좋은 기억 때문에 몇 년 전 아내와 같이 백련사를 거쳐 향적봉까지 걸으면서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 시절 함께 간 죽마고우들은 지방에 살지만 지금도 좋은 우정을 지니고 산다. 이런 좋은 기억들이 쌓여서 사람마다 스토리와 인연이 되어 추억의 성을 쌓는 것 같다.

 

법정 스님은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을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했다. 20대에 같이 등산한 동생과 고향친구처럼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가는 인연이 아닌 ‘진정한 인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잘 이어가야겠다. 인생은 누가 재산을 많이 모으는지가 아니라, 누가 건강을 잃지 않고 멋스럽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요즘같이 물질만능주의 시대, 진정한 친구는 바르게 충고하고 기꺼이 도와주며 인내하고 용감하게 지켜주며 변함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갈망하는 희망과 행복은 자기 혼자 찾거나 성취할 수 없다. 행복은 나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진정한 인연 사이에서 나온다. 이런 희망과 행복은 청춘이라는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지난겨울 덕유산 정상의 흩날리는 눈보라와 눈꽃은 장관이었고, 20대 초반 죽마고우들과 향적봉을 산행하며 나눈 우정, 희망, 행복의 인연은 오래 기억된다. 겨우내 언 땅을 가르고 솟아나는 풀잎의 놀라운 힘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생명들이 봄을 재촉하는 비를 맞아 삶의 고동을 울리는데 우리의 삶도 이처럼 때에 맞게 흘러가면 좋겠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후 소나무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살이 봄을 느끼게 한다. 햇빛에 반짝이는 나무 가지들이 눈을 부시게 하고, 흙길을 걷는 동안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봄 내음 번지는 덕유산에 가서 철쭉 군락의 아름다운 꽃을 다시보고 싶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식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겨우내 식물들은 봄이 오면 꽃을 피우려 추위와 거친 바람을 이겨 낸다. 이처럼 봄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식물들이 추위를 이겨내듯 좋은 인연과 우정을 잘 키우며 살아야 희망과 행복도 유지된다. 봄 내음이 번지면 새 희망도 찾아오니 너무 조바심 내지말자. 언 땅을 가르고 돋아나는 새싹들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포기하지 말고 새 희망의 잎을 틔우자.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3. 03. 08.)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