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문화 마을학교 시낭송

(에세이) 율곡의 화석정과 황희의 반구정 / 류시호 작가

경산2 2020. 4. 12. 21:12

  율곡의 화석정과 황희의 반구정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오랜만에 자유로를 따라 율곡 이이의 고향 파주시 율곡면 화석정을 갔다. 비무장지대 북쪽을 바라보며 깎아지른 봉우리에 세워진 정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임진강 건너 넓은 장단평야가 보이며 풍경이 좋다. 요즘 마을 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데, 조선왕조 선조 편에 율곡 이이가 나온다. 율곡은 관직을 물러난 후에 이 정자에서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교사 시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건국대 신병주 교수의 ‘조선왕조실록과 기록문화’ 강의를 듣다 보면 이이와 황희 선생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경기도 파주시 율곡면은 아버지 이원수의 본가다.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본가인 강릉오죽헌에서 태어나 6세 때 율곡으로 왔다.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3세부터 과거에서 9번 장원급제를 하였다. 고려 시대 3번 과거에 장원급제한 천재 정몽주와 조선 시대 율곡은 자랑스러운 선조들이다.

 

여러 해전, 강릉 오죽헌에 간 적이 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정집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돈을 보면 5천 원 권 지폐에는 율곡의 초상화가 있고, 가장 비싼 5만 원 권에는 신사임당 얼굴이 나온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에 본인과 어머니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명문 가문이다.

 

문산의 임진강 강변에는 청백리의 사표 황희 선생이 만년에 갈매기와 벗하며 보낸 반구정이 있다. 조선왕조 초기 태종의 신하로 있다가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 문제와 관련해서 유배를 갔다. 그 후 다시 세종에게 천거되어 영의정으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한강 하구의 노을과 철새들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파주시에는 황희와 율곡 등 명 정승들의 고장이다.

 

황희는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조선조 최장수 재상이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원칙과 소신을 견지하면서도 때로는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건국 초기 조선의 안정에 기여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던 우리 역사의 격동기였다. 황희 선생은 고려 말 과거 급제 뒤 성균관 학관을 거치면서 꿈을 펼치다가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 중 역사적 사건 앞에서 정치적 시련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한편, 자유로의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교하(交河)지역 패권을 두고, 1천6백 년 전 고구려와 백제가 쟁탈전을 벌였다. 그곳이 오두산성(관미성터)으로 지금은 통일을 위한 가교역할을 하는 곳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보면, 강 건너 김일성 사적관, 인민문화회관, 북한군 초소를 눈으로 볼 수 있다. 오두산성에 서면, 분단의 현실을 느끼고, 임진강 사이로 남북 간의 초소가 있다. 제일 짧은 임진강의 강폭이 390여 미터이다.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수도권에서 가장 가깝게 북한지역과 대치하여 안보 교육에도 좋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이라 풍경도 좋다. 그리고 길이 넓은 덕분에 많은 사람이 나들이하러 간다. 모두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씩 자유로를 달리며 율곡 이이의 화석정과 황희 선생의 반구정,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삶의 활력소를 찾아보자. 가슴이 답답할 때 강변북로를 따라 행주대교가 있는 자유로를 달리며, 코로나 19 전염병도 이겨내고 율곡과 황희 선생의 흔적 역사도 둘러보며 인문학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자.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20. 04. 13)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