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수안보에서’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설날 연휴에 큰아들 부부, 작은 아들부부와 손주들을 데리고 수안보온천 상록호텔을 향하여 달렸다. 집에서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아이들 재롱을 보는 것도 좋지만 여행을 떠나면 일상에서 벗어나기에 좋다.
이 호텔은 현직 부부공무원인 작은아들과 공무원 연금수혜자인 나도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가끔씩 이용한다. 체크인을 하고 난 후, 눈썰매장으로 가다가 스키장을 앞을 지나니 스키를 타고 싶었다. 아들들 어릴 때 겨울마다 스키장을 다녀 우리가족 모두가 스키를 잘 타지만 어린 손주들을 위해 썰매장으로 갔다. 눈썰매장은 처음 갔는데 큰 손주와 작은 손주가 무서워하면서도 즐거워해 가족 모두가 재미있게 썰매를 탔다.
호텔로 돌아와서 잠시 쉰 후 온천탕에 갔다. 온천은 겨울이라 더욱 좋고 아들들과 목욕도 무척 오랜만이다. 아내는 가족 모두가 여행을 하니 좋아서 기분이 들떠 있었다. 저녁은 동료교사들과 가끔씩 갔던 한정식식당에서 작년에 채취하여 저장 한 자연산 버섯전골과 이 동네 명물 꿩고기 탕을 주문했다. 음식은 추억으로 사람들은 추억 속에서 지나간 세월을 더듬는데, 이집 주인의 뜨끈한 밥상을 보니 교직에 근무하던 시절이 오지게 그리웠다.
다음날, 경기도 이천의 돼지박물관을 갔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돌고래나 원숭이, 강아지의 묘기를 보는 체험학습은 가끔씩 가보았지만 돼지들의 묘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돼지와 함께 체험학습을 겸한 박물관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이며 손주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아들들도 좋아했다. 춥다고 웅크리고 집에만 있기 보다는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잘 떠난 것 같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가끔씩 새로운 충전의 여행과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행복함을 얻기 위해서다. 자신이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할 수 있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도 생긴다. 사람과 비교가 안 되는 ‘동고비’라는 새도 작고 약하지만 부지런함으로 어려운 세상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산다. 김수환 추기경은 “잘했어요. 한마디가 용기를 주고, 즐거운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하며, 사랑의 한마디가 축복을 준다.”고 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잘했어요.’ 이 한마디를 못하고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겨우내 얼어 있던 생명체들이 봄비를 맞아 생명의 고동을 울린다. 동고비 같은 작은 새도 부지런함으로 자연에서 잘 생존하는데, 우리도 봄비 덕분에 힘차게 일어 설 수 있을 것 같다. 남쪽에선 산수화와 매화가 피고 있다. 퇴계 선생은 맑은 꽃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청진(淸眞)한 표상을 보았다며 매화를 좋아했다. 우리의 삶도 매화처럼 맑고 밝게 살기를 고대해 본다.
꽃봉오리들이 움츠러드는 것은 봄의 시새움 때문이며 꽃샘추위를 겪어야 진정한 봄을 맞을 수 있다. 꽃들은 매서운 겨울을 이겨 낸 후 꽃망울을 터뜨리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매년 식물은 새로운 꽃을 피우려고 긴 추위와 타들어 가는 가뭄, 거친 바람을 이겨냈다. 봄은 우리를 많이 기다리게 했지만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나무가 봄바람에 꽃잎을 다 잃기 전 가족들과 야외로 나가봐야겠다. 나무는 누군가에게 보여 주려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 모두 새롭게 피는 꽃잎들처럼 포기하지 말고 새잎을 틔우며 힘차게 살자. 햇살이 들판 위로 내려오면 가지런히 갈아엎은 밭고랑 사이로 봄노래가 흘러나올 것이다. 수안보에 벚꽃이 피면, 다시 가서 눈과 귀, 마음으로 봄노래를 부르고, 아내,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봄기운에 꿈틀대는 논둑길을 걷고 싶다.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4. 03. 14.)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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