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가는 길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지난 2월 중순, 오랜만에 양평군 용문사로 출발했다. 용문사는 오래 전 2번 다녀왔고,
이곳보다 더 멀리 있는 유명한 사찰도 가끔씩 갔는데, 신라신대의 고찰인 용문사를 자
주 못가서 아쉬웠다. 이제는 중앙선 전철이 용문역까지 완공되어 승용차가 아닌 전철
로도 가기가 쉬어졌다.
청량리역을 출발 용문역에 내리니 역사(驛舍)를 리모델링하여 깨끗했고, 30분마다 운
행하는 버스가 용문사까지 갈 수 있어 편리했다.
경내에는 수령이 천 백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30여 년 전 처음 왔을 때는 가을이라 노란 은행나
무가 너무 멋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산자락에 조성된 흙길을 걸으면서, 앙상한 은행나무의 긴 세월처럼 지나 온 삶을 돌아
보게 한다. 차가운 산바람을 마시며 걷다보니 사무실에서 고민하던 걱정거리나 사소한
마음의 상처는 끼어들 틈이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먼 길을 잘 걸을 수 있을까
상념에 잠긴다.
걸음을 멈추고 천년 넘은 은행나무를 생각해보니, 나무의 삶이나 인간의 삶 모두가 중
요함을 인식했다.
젊은 시절 이 절을 방문 했을 때, 버스에서 내려 논두렁길을 걸어 산사로 이어졌는데
그때의 추억이 아련하다. 누구나 걷다보면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고, 복잡하고 불편한
심사가 너그러워져 남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고, 마음이 비워져 편안함도 느낄 수 있다.
일이건, 사람 관계건, 아픈 기억을 망각하고 싶을 때 포근한 산길을 걸으면서 머리를
식히면 고적(孤寂)한 마음을 다질 수 있어서 좋다.
사람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분들과 인간관계를 맺는지에 달렸으며, 믿음과 신뢰를 지
탱해주고 발전시켜 주는 것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도시생활은 메마르고 서로를 외면
하기 때문에 작은 배려에도 따스함을 느끼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톨레랑스(다름을 인정하는 것)가 더욱 절실해 진다. 사랑
이란 손과 발에 어떤 생각을 담아 다른 사람에게 소리 없이 배려하는 것으로 이처럼 따
뜻한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해본다.
봄이 되어 소가 쟁기질한 흙은 어머니 품처럼 보드랍다. 파헤쳐진 흙 속에 뿌려진 씨
앗은 어김없이 싹을 틔울 것이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이 사랑이 부족한 우리 곁
에도 봄은 오고 꽃도 필 것이다.
그 밤에 꽃비를 맞으며 달과 별을 보며 산책도 하고 싶다. 오랜만에 용문사 가는 길에서
정겨움과 따스함, 행복, 사랑, 기쁨과 감동을 보았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에 영감을
주면, 어떤 봄꽃보다 더 활짝 피어나리라 믿는다.
연두 빛 나무에 향 좋은 꽃이 필 때에, 느릿한 기차를 타고 다시 용문사 가는 길을 걷
고 싶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책 한권의 여유를 누리며, 저 멀리 반가움에 못 이
겨 손을 흔들며 달려올 친구와 같이 걸어야지.
참으로 인생은 모든 것이 선물인데 주변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하며, 누가 알아주건
말건 세월을 이겨내며 묵묵히 걸어야겠다.
중부매일 칼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04. 16.)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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