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을 세운 이성계와 정도전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오랜만에 동구릉(東九陵)을 갔다. 서울 동북쪽에는 동구릉이 있고, 서쪽 고개 너머 서오릉(西五陵)에는 조선왕조 오백 년의 대표적인 군주들이 잠들어 있다. 동구릉은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후비가 잠들어 있는데, 6백 10여 년 전 조선의 태조를 건원릉에 모시면서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마을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이성계와 정도전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스토리가 나온다. 이성계는 함경남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이자춘이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에 빼앗겼던 철령 이북 땅을 되찾아 큰 공을 세웠다. 원나라 말기,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쳐들어 왔다. 이성계는 홍건적 두목을 활로 쏘아 죽여 젊은 영웅으로 떠올랐다.
정도전은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운경이 높은 벼슬에 오르면서 정도전은 당시 최고의 학자 이색에게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스무 살 되던 해에 과거에 합격했고, 공민왕이 사랑하는 신하로 성장했다. 공민왕이 죽고, 친원파들이 원나라에 갈 사신으로 정도전을 사신으로 추천했는데 정도전은 거절했다. 그러자 친원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도전을 귀양 보냈다.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나라의 권력을 손에 넣으면서 정도전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정도전은 백성들의 마을을 얻을 수 있는 정책을 펴나갔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의 왕으로 올랐다. 정도전은 조선을 다스리는 법 ‘조선경국전’을 펴내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조선의 중앙 관직과 지방 행정의 틀을 마련했고, 새 도읍 한양의 모습을 설계하고 각 궁궐에 이름을 붙였다.
교직에 근무할 때,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수를 여러 번 받았다. 그래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 대한제국 등 조선 유물과 건축물들의 상세한 설명과 견학도 많이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도전을 역성혁명론을 실천한 풍운아로 표현하고 있다.
정도전을 잃고 왕자의 난으로 마음이 떠난 이성계는 고향 함흥으로 갔다. 그래서 태종 이방원이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아버지를 한양으로 모셔오려고 사신을 보냈다. 그런데 함흥으로 간 이성계가 그 사신들을 죽이거나 잡아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부터 한번 가면 감감 무소식인 사람을 가리켜 함흥차사(咸興差使)라고 한다.
동구릉과 서오릉,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 사직단 등을 가면 조선왕조의 화려한 시절을 볼 수 있다. 나라를 세운 군주도 죽고 나면 조그마한 땅으로 돌아간다. 권력은 영원한 것이 없다. 날아다니는 새도 쓰러트릴 것 같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든가. 단종의 죽음, 연산군, 장희빈의 아들 경종 등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권력을 잡는 기간은 짧다. 왕릉이나 동작동 국립묘지를 가보면, 왕이나 대통령들의 권력이란 잠시 유지될 뿐 허망하다.
이성계와 정도전도 흙으로 돌아가 무덤만 남았다. 왕조시대에서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정권을 잡는 기간도 짧아졌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대기업 2세들의 형제간 지분 싸움과 정치인들이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다투는 것을 보면 암울하다.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들 모두 정직하고, 깨끗하게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 이제는 그만 싸우고 양보하며 배려하고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을 만들도록 함께 노력하자.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20. 07. 09)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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