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의궤와 음식문화
경산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프랑스에서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전시회를 보고 5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그림솜씨와 문장력에 감탄을 했다. 의궤라는 책은 조선시대 각종 행사를 재
현할 때 활용하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의궤란 의식과 궤범을 줄인 말로 불교용어이며, 각종 행사의 기준을 그림과 글씨로
표현한 책이다. 사찰과 왕실에서는 각종 의식과 행사를 의궤로 만들었다. 기록문화이
면서 그림으로 설명한 의궤는 조선시대 신하들이 막강한 국왕의 권한을 견제하는 방
안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의궤의 종류를 보면 국왕의 일생을 보여 주는 태실, 왕세자 책봉, 즉위식, 장례, 무덤
조성, 종묘와 사직의 증축, 제례 절차, 궁중 잔치, 어진 제작과정, 국왕의 농사짓는 과정,
궁중의 누에치는 행사, 사신영접 등을 색깔을 사용하여 그림과 글씨로 표현했다. 건축
의궤는 성곽 및 건물 건축과정 등을 순서대로 나타냈다.
이 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조가 융건릉에서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하기위해,
창덕궁을 떠나 수원으로 가는 원행(園幸)도감의궤의 잔치상이 아닐까 한다. 원행 중
어머님께 올린 ‘삼합미음’은 건해삼과 동해산 건홍합에 소 우둔육 한 덩어리를 숯불에
서 물러지도록 곤 후 여기에 찹쌀을 넣어 걸쭉하게 쑨 것이다.
이것을 3년 된 간장을 곁들여 먹으면 노인과 병든 사람에게 매우 좋은 보약이 된다고
했다.
홍합은 서양에서도 각종요리에 넣어 남녀가 즐겨먹고 있으며 카사노바도 즐겨먹었
다고 한다. 맛과 약용 성분이 좋은 것은 크기가 작은 동해산이 으뜸이라 하고, 조선시
대에는 강원도와 경상도 동해에서 나는 홍합을 선호했다.
제주도의 여자 거상 김만덕은 말린 홍합을 많이 취급했다. 의궤나 승정원일기, 실록에
기록 된 내용을 보면 조선왕조 군왕의 식사는 화려하지 않고 검박했으며 이것이 조선
을 500년간이나 버티게 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의궤에 각종요리방법이 나오지만 약 340년 전 경상북도 영양지방에 살았던 사대부가
장계향의 ‘디미방’이라는 요리책도 있다. 피자가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이 된 것도 50년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통음식들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우리가 전통한식이라고 하는
음식도 100여 년에 불과하고, 요즘 즐겨 먹는 김치는 50여 년 전부터 현재의 맛과 모양
을 갖추었다.
음식은 끊임없이 변하며 현대의 요구와 미감(美感)에 맞춰 재해석·재창조되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한식에 접목한 음식을 ‘퓨전’이
라고 하여 배척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전통한식의 상당수가 퓨전이며, 어떤 식재료건 요리법이건 한국 사람이 주체적으로 수
용하면 한식(韓食)이 아닐까한다.
우리의 한식이 한류를 타고 세계로 널리 뻗어나가고 있다. 음지에 있던 조선왕실 의
궤를 다양한 스토리 산업으로 개발하여 활용하자. 해외로 수출한 드라마나 영화를 통
하여 한식이 세계인들에게 주목받고 있고, K팝 덕분에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 그리고
거리가 먼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한국문화가 알려지고 있다.
건강식이며 자연 친화적 우리 음식이 세계 사람들의 슬로푸트로 널리 애용되길 기대
해본다.
중부매일 칼럼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06. 27.)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