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의 호로고로(瓠蘆古壘)와 고랑포구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호로고루(瓠蘆古壘)를 갔다. 연천군은 남한지역에 고구려의 유적이 제일 많은 곳이다. 연천을 대표하는 고구려 유적은 호로고루, 당포성, 온대리성으로 강안(江岸)의 평지성들로 강대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연천의 임진강은 6세기 중반부터 고구려가 멸망하는 7세기 후반까지 약 120년간 신라와 백제를 방어하기 위한 국경선이었다. 이 지역 고구려 3대 성은 국경방어의 핵심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호로고루는 호로(瓠蘆)는 고구려어의 성(城) 이나 곡(谷)을 뜻하는 홀(忽)과 같은 의미이고, 고루(古壘)는 오래된 성을 뜻하는 명칭으로 추정된다.
마을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백제의 근초고왕이 서기 371년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런데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서기 391년 백제를 공격해 관미성(오두산 통일전망대), 위례성(잠실 올림픽공원), 호로고로(연천군) 등 한강 북쪽의 땅을 빼앗았다. 그 후 신라의 진흥왕은 백제의 성왕과 힘을 합해 고구려를 공격했고, 백제가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주변의 땅을 다시 찾아서 나누어 가졌다. 그렇지만 신라의 진흥왕은 서기 553년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주변의 땅을 모두 빼앗아버렸다.
윤명철 교수의 삼국통일 전쟁 칼럼을 보면, 고구려 복국군은 한성(서울)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672년에는 신라와 연합해 당나라와 백빙산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했다. 이어 673년 호로하(임진강 중류) 전투에서도 패했다. 이처럼 호로고루성은 고구려 역사에서 남쪽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기지였다.
호로고루와 임진강의 고랑포구는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물자교류의 중심역할을 하던 나루터이다. 1930년대 개성과 서울의 물자교류를 위하여 고랑포구에 화신백화점의 분점을 설치할 정도로 번창하였으나 남북분단과 6.25 전쟁으로 쇠락하였다. 그리고 이 포구는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침투로로 유명하고, 6.25 전쟁 때 캐나다 군인들이 겨울철 아이스하키 시합을 하며 시름을 달래기도 했다.
근처에 있는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가면, 레클리스 하사 군마(軍馬) 동상이 있다. 레클리스 하사는 미군에서 한국전쟁에서 용감하게 활약했던 군마다. 1953년 경기도 연천에서 미국 해병대와 중공군의 네바다전초전투에서 사람 도움 없이 하루에 약 51차례 탄약을 실어날랐으며, 이 공로로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받았다.
연천군의 안보 관광은 군부대 승전OP 인근에서 1·21 북한 간첩 침투로와 경순왕릉, 호로고로, 당포성, 은대리성, 전곡 선사박물관 등 다양한 안보 역사문화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 장남면에는 해바라기 축제도 유명하다.
호로고로성이 있는 연천군 고랑포구는 삼국시대부터 군사 경계선 지역이었다. 이곳은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와 전쟁 시 평양을 방어하기 위한 남쪽 방어의 중요한 전초기지였다. 그리고 고랑포구가 임진강을 통한 물자이동, 서해진출 등 상업적인 중심역할 나루터임을 알게 되었다. 한편 연천군에서 남한지역 고구려 역사유물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가웠다. 필자는 역사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미래의 몫이고, 사건의 축적이 아니라 의미의 재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뉴스시선집중 (2020. 03. 27)발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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