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잡지 발표

풀빵의 추억

경산2 2013. 1. 20. 07:20

 

 

     풀빵의 추억

                                       경산 류시호 / 시인·수필가

오래전 대기업을 명퇴 후, 아내를 위로하고 새로운 사업구상도 할 겸 처음으로
부부 해외여행을 태국의 파타야로 갔다. 아내는 아이들 교육비와 진로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안해했다.

나는 출장과 연수로 해외여행을 많이 했지만, 태국여행은 오랜 기간 뒷바라지
하며 고생한 아내를 위해서였다. 파타야에서는 해수욕과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변에서 배를 타고 건너면 산호초가 있는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밭이 인
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에도 잠겼지만 대기업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쌓인 스
트레스도 풀고, 새로운 직업에 대한 구상을 한 뒤 귀국 후 글짓기논술웅변학원
과 유치원을 시작하였다. 그동안 회사에서 경험한 노하우를 활용하여 마케팅,
교육기획, 교사교육, 운전기사, 인테리어, 세무, 자금 등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
상화 시켰다.

쌀쌀한 초겨울 오후, 은행에 다녀오다가 풀빵장수를 만났다. 평소 학원의 아이
들을 안내하거나 배웅할 때, 길가에 나가면 풀빵아줌마의 손놀림을 가끔씩 본다.
작은 쇠꼬챙이를 회전하며 굽는 빵이 기계위로 춤추듯 지나가면 노릇노릇 익은
풀빵이 순식간에 뒤집혀지고 온기를 머금은 빵이 고소한 향내를 퍼뜨렸다.

간식이 생각나는 시간, 학원생이 볼까봐 풀빵 2봉지를 외투 속에 품고 원장실
로 들어서니 코끝이 찡해왔다. 마음이 허허로울 때 빵 봉지가 내 가슴을 따뜻
하게 지펴주었고 교사들과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서민들의 간식 풀빵은 1930년대 일본에서 건너왔고, 일본에서는 도미빵(다이
야끼)이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붕어빵이라고 부른다. 일본인에게 친근한
물고기는 도미이고, 한국인에게는 붕어이기 때문에 붕어빵으로 이름을 붙었
다고 한다.

붕어빵 아줌마를 보면서 생각을 해본다. 인생에서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주고
애쓰는 지인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치유를 얻을 것이다.

사람이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잘 적응해야하는데 적응을 못하는 분들도 있다.
행복이란 매일 꼭 챙겨 먹어야 하는 한 끼 식사와 같은 것으로, 어려움을 극
복하고 노력하면 행복도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험한 세상과 부딪치면서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자세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도 필요하다. 길고도 먼 삶을 살면서 시련이 한 번도 없다
는 것은 축복받은 적이 없다는 것 아닐까.

그동안 회사에서 명퇴 후 아픔을 맛보았고 글짓기학원과 유치원을 경영하며
시련도 있었으며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하면서 축복도 받은 것 같다.

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차분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면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인다. 그 바람 때문인지 겨울나그네가 되어 기억을 들춰낸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붕어빵이 식을까봐 봉지를 외투 속에 품고 원장실로 들
어서던 추억이 생각난다. 올 겨울은 눈도 자주 오고 추운 날이 많은데 어렵게
노점에서 고생하는 풀빵장수의 붕어빵을 자주 팔아주어야겠다.

경제가 어려웠던 한해가 지나고 있고, 고소한 풀빵을 보니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새해에는 국민 모두가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행복함을 누렸으면
한다.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아침뜨락 (2012. 12. 27.)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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